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동역을 통한 변화 (1) 바나바와 바울의 동역

늘찬양 2006. 11. 29. 16:31
 

동역을 통한 변화 (1) 바나바와 바울의 동역

                       행 9: 26-31,2006.10.08.늘찬양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추석 명절 연휴를 보내는 동안 그 누군가를 감동시킨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감동케 한 일이 얼마나 되십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으로 인해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뿌듯한 삶을 사신 것이지만 그러나 만약 지나온 한 주간, 한 달, 1년, 지나온 한 평생 동안 나로 인해 감동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삶은 재고해 보아야할 삶입니다. 감동은 커녕 상대방에게 짜증만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실망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런 인생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Ⅰ.  감동을 찾는 사람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감동케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물질이 넉넉해서나 보이는 것이 다채로워서 세상이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감동을 일으키는 사람

이 많을 때 사회가 아름답고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감동시키기가 어려운 것은 감동이 인위적인 향수처럼 풍기는 게 아니라 자연적인 향기처럼 우러나와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그러나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감동하고 행복해한다면 그처럼 기분 좋은 일 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회의 기쁨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 속에서 감동을 주는 교우들을 만납니다. 그 기쁨, 그 즐거움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참 묘해서 냉수 한 그릇으로 감동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금 덩어리로도 감동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감동은 아무나 끼칠 수도 없고 아무나 경험할 수도 없는 하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렵고 감동을 받는 것 또한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시대는 점점 감동은 없고 자극만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

다. 편리하고 화려하고 넉넉하지만 감동을 맛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불편하고 수수하고 가난했던 옛 시절에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가르쳐 감동이 없는 시대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7절에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아무 감동이 없이 사는 사람들,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이 없는 것은 저주입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무언가 하나님과 관계에 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괴로운 일입니다. 감동은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있고 말씀에 마음이 깨달음이 있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다면 이것이 곧 은혜입니다. 성경은 감동을 원하는 시대에 참 감동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사실 진정한 감동은 순수함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감동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깁니다. 진정한 감동은 잔잔함에서 우러나옵니다. 시인 박노해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이 나날이 새롭

다는 것을 깨닫고 감동하고, 울타리에 피어난 개나리꽃에 스며든 새 봄에 감동하고, 사랑

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밥상을 대하며 감동하고, 잊었던 파랑새 소리를 들으며 감동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창조력을 잃어버린 사람이요,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영적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감동시켜 달라!“ 외쳐보지만 정작 감동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창조력을 잃어버리고 영적 성장이 멈춰버린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동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

다. 그 주인공은 바나바입니다.



                        Ⅱ. 섬김을 통한 감동


     성도가 성도다워 보이고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는 섬김의 자리에 있을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볼 때, 신앙생활에 생동감이 넘치고 눈에 빛이 날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그때는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모습일 때였습니다.


남들보다 삼십분에서 한시간 이상 일찍 나와야 성가대도 할 수 있고 교사도 할 수 있고 주차안내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청소를 하려면 하루의 반나절을 다 보내야 하고 주일 점심 준비를 하려면 2~3일 전 장봐다가 김치 담궈 놓는 일부터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주일날 꾸준히 예배자리만 지키기도 벅차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도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한 모퉁이를 감당하였다”는 감격과 자부심으로 말없이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코 감동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과 헌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36-37절에 보면 바나바가 과연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였는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앞에 두니라”

바나바는 본명이 '요셉'이었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이 아들을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 같습니다. 학자들은 요셉이던 그가 성령강림 사건 때 성령을 받고 일찍이 크리스천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교회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때 사도들

이 그의 모습을 보고 붙여준 별명이 '권위자'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자란 '에헴~'하고 권위를 잡고 다녔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이 권위자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사도들이 요셉이라는 이 사람을 볼 때 초대교회 안에서 드물게 '다른 사람들

을 권고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바나바처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새 힘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바나바의 격려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7절에 보면 그는 자기 밭을 팔아서 만든 그 값을 가지고 와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교회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 큰 힘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이렇듯 바나바는 교회에 참으로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휴지

전도의 동역을 외치고 있습니다. 1구좌 5000원씩입니다. 이렇게 적게 금액을 잡은 것은 내가 교회에 얼마를 바쳤다는 것보다는 늘 그 중심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나도 뭔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하는 여러분의 감동과 열망을 이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성장하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에는 이렇듯 귀한 바나바가 많이 필요합니다.



                        Ⅲ. 화해를 통한 동역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가하는 문제는 사도행전 9장에서 또 한가지 찾아볼 수가 있습

니다. 이때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바울이 된 직후였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고 나니 그의 입장과 헌신의 열정은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동

안 자신이 행하였던 모든 잘못과 악행을 회개하고 크리스천들과 한 마음이 되어 복음 증거 의 사역을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9장 26절에 있는 대로 “사울이 예루살렘

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울

로서는 답답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먼저 믿은 크리스천들을 만나서 예수에 대해서 듣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도무지 믿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그의 방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울의 회심을 초대교회가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도행전 9장 1-2절에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

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렇듯 어떻게든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 체포하려는 잔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아마 이것은 분명히 작전이야, 분명히 교회 안에 들어

와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명단을 확보한 다음 일거에 잡아넣으려는 속셈일거야. 속지 말아

야 돼"하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때가 바울의 가장 곤혹스러웠던 순간이었을 것 입니

다.


이미 유대교인들에겐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크리스천들은 자기를 믿어주질 않고 있었습니

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때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때의 바울의 심정을 상상해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때의 바울의 심정은 '고독'이었습니다. 너무나 '답답했을 것'입니다.

난 그런 사람 아니라고 속을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때 오늘의 주인공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9장 27절에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입장이 곤란하고 답답한 바울을 위하여 바나바가 한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신원보증'을 서 준 것입니다. 아마 다른 생각하시다가 '신원보증'소리에 깜짝 놀라신 분들

이 계실 것입니다. 왜? 신원보증은 혈육간에도 잘 안 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남들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일이지만 기쁨으로 자원하여  "사도들이여, 진짭니다. 내가 보증합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인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변했고, 다메섹에서는 이미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28절에 보니까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

에 출입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바나바의 보증을 통해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떳떳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본격적으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함께 일할 수 있게 됩

니다. 사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복음을 위한 헌신적인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그를 믿어주었던 사람,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위대한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세워 주었던 화해의 사람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바나바가 오늘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이 없

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피워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지 모릅니다. 조금 부족

해도 부족하다 책하지 않고 조금 뒤쳐져도 쳐진다 조롱하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바나바요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속에 바나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지금 교회를 나오지 못하고 쉬고 있는 성도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함께 교회를 부흥시키며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사역자로 거듭나게 하는 화해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

다.


                

                          Ⅳ. 세워주는 동역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제자들이 찾아가서 그를 지도자로 변화시켜 하나

님의 사역에 헌신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바나바'라는 집사 한 사람, 즉 신뢰와 섬김의 사람, 권위와 사랑을 가지고 얽혀진 빗장을 푸는 사람, 자신이 이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분명한 신원 보증을 선 바나바가 있었기에 드디어 이방의 빛이요 사도로서 큰일을 감

당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29절을 보면 비로소 바울이 제자들과 함께 하게되고 뿐만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제 바울이 본격적으로 큰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배후에는 그를 믿어주고 그의 삶 속에 잠재되어 있던 위대한 가능성과 하나님의 큰 일군으로서의 바울을 믿어준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이 바나바로 인하여 바울은 헬라파 유대

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이제는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의 교회가 끝까지 바울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질 않았다면 전하여질 복음이 어찌

되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나바의 섬김으로 바울 사역이 열어지자 본문 31절에 기록

되어 있듯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11장 19절부터 26절에 보면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곳곳으로 흩어질 때 더불어 성도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므로 안디옥 교회가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돌보고 전도를 지속하기 위해서 지도자로 바나바를 보내기로 예루살렘 교회가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어 졌습니다. 날로 안디옥 교회는 성장에 성장을 더해갔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아주 특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나바가 자신이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해 주었던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내려 갔습니

다. 회심한 후 크리스천들과 함께 동역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열심히 뛰려는 사울이 의기

소침한 채 다소에 머물고 있는 사울을 찾아가 나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위하여 일 해보자

고 권고합니다. 요즘말로 ‘팀사역’을 요청한 것입니다. 사울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그렇게도 소원이었던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자신

을 보증하고 세워준 바나바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감격해하며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

과 함께 사역을 위한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동역자로 함께 사역을 하면서 그의 이름은 바울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언어의 능력과 열정과 헌신을 사용하여 헬라파 유대인

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로 기독교사에 우뚝 서게 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훗날 바울로 등장하는 사울의 목회를 있게 한 것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의 보증과 세워줌의 따뜻함이 없었다면 그는 홀로 버려진 사람, 실의

에 빠진 채 절망감에 빠져 버린 사람으로 살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의 대 부흥의 역사도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속에 한 때는 사울과 같은 잘못된 길을 걸어갔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간의 환경

을 통하여 시련을 통하여 고난을 통하여 그가 언제 마음에 예수님을 믿고 또는 변화되고 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먹고 기회를 엿보며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먼저 찾아가서 내미는 따뜻한 손길의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합

니다. 그 따듯한 손길 하나 때문에 그들이 힘을 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힘있는 은혜의 사람

으로 변화될 뿐 아니라 교회도 놀라웁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감동의 역사, 동역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여러분 속에서 꼭 나타

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목장모임

        ♣ 동역을 통한 변화(1) ♣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그 누군가를 감동시킨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지금

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감동케 한 일이 얼마나 되십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으로 인해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뿌듯한 삶을 사신 것이지만 그러나 만약 지나온 한 주간, 한 달, 1년, 지나온 한 평생 동안 나로 인해 감동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삶은 재고해 보아야할 삶입니다. 감동은 커녕 짜증만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실망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런 인생은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한 말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생'입니다.



▶ 바나바는 복음의 확장을 위해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체험하고 변화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그로부터 간증을 듣고 난 후 어떻게 바울을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였습니까? 소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가 바울을 굳이 일꾼으로 세루려는 본뜻이 무엇입니까?


▶ 바나바가 바울을 동역자로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세움의 과정을 올바로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가 보여준 세움의 모습은 ......

  그는 아낌없이 주는 "베푸는 사람" 이었다.

 ② 그는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화해의 사람󰡓 이었다.

 ③  그는 위로하며 격려하며 󰡒힘을 주는 사람󰡓 이었다.

 ④  그는 남의 잘 됨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관용의 사람󰡓 이었다.


▶ 한 주간 동안 나는 늘찬양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이웃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습니까? 특별히 추석을 지내면서 자신이 남에게 감동을 준 사건이나 또는 감동받은 사건이 있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① 교회를 감동시킨 나의 동역사건은 무엇이 있습니까?

② 목사님과 사모님을 감동시키며 동역한 사건은 무엇이 있습니까?

③ 앞으로 교회와 복음사역을 위해 내가 함께 동역하고 싶은 사람과 내용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