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바울의 아름다운 동역자 브리스가 부부

늘찬양 2013. 9. 21. 11:56

      바울의 아름다운 동역자 브리스가 부부

           행 18:1-4, 롬 16:3-5,2013.09.22.늘찬양교회

 

성경에 나타난 많은 부부들 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부부는 그리 만치가 않습니다. 더욱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가장 성서적이며 이상적이며 모범적인 평신도 부부라고 칭찬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성경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이름이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소개되는 데 언제나 부부의 이름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행 18:2, 18, 26). 그 중에 두 번은 (행 18:2, 고전 16:19) 남편인 아굴라의 이름이 먼저 사용되었고 그리고 4번은 (행 18:18,

26, 롬 16:3, 딤후 4:19) 아내의 이름인 브리스길라(브리스가)가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편 아굴라보다 부인 브리스길라가 하나님께 더욱 헌신적으로 충성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내 브리스길라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남편 아굴라가 넓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내 브리스길라는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도와 헌신적으로 장막 만드는 일과 바울을 도와 주의 일을 아주 모범적으로 한 신앙의 부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종종 이런 가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신학교를 나와서 교회에서 심방 여전도사로 일하는데 남편은 평신도로서 교회 봉사를 하고 있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또 아내는 권사에 각종 여전도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반면 남편은 서리 집사도 아닌 평신도로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내가 성가대 지휘자로 또는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남편은 학생회 부장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일을 함에 있어서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아래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행하는 부부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을 도와 고린도교회와 에베소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듯이 목사님을 도와 늘찬양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헌신적인 부부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만남

남편 아굴라는 본도 유대인 출신으로 본도는 흑해 남해안에 있는 소아시아 북부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브리스가 역시 같은 유대인이었지만 로마의 전형적인 귀족 출신으로 남편보다는 더 나은 사회적 신분과 물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가(史家)에 의하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로 로마에 잡혀왔으나, 후에 자유인이 되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의 유대인 여자 브리스길라와 결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아굴라는 천막을 만드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물질이 없었기에 재정적으로 넉넉한 브리스길라와 합작하여 공동으로 천막제조 공장을 차리는데 뜻을 맞추어 함께 일하다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떻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서로 만나서 로마에다 큰 천막 제조 공장을 차렸으며, 고린도에베소에는 지점까지 차려놓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로마 안에 있는 유대인 사회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듯이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브리스길라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떠나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남편이 전에 유대인 노예였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 가정에 큰 화를 당할 것으로 여겨 남편 아굴라를 따라 지점이 있는 고린도 땅으로 이사했습니다. 고린도에 옮겨온 후에도 이들의 천막 사업은 날로 번창해 갔습니다.

Ⅱ. 브리스길라 부부와 바울의 만남

이때 주의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손짓하는 환상을 보고(행 16:9-10) 아시아에서 발길을 돌려 아가야로 향했지만 그의 전도사역은 기대처럼 부흥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염려로 거의 병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로마 정부의 박해가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 아가야, 아덴에서조차 복음이 실패하자 의기소침한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빌립보 감옥에서 심한 매를 맞은 관계로 육체적 건강도 거의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아마 이때, 자신의 육체적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세 번씩 기도(고후 12:7-10)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 어려서부터 한 가지 기술을 습득해야 했는데 다름 아닌 장막(천막)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한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장막 만드는 일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어떤 사람의 소개로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천막제조 공장을 소개받고 이 두 부부를 찾아옴으로서 바울브리스길라아굴라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만나 쉽게 의견 투합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함께 일하였으며, 또 함께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Ⅲ. 복음에 영적 눈을 뜨게 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사도 바울은 업(業)이 같음으로 시작된 공동생활 속에서 서로 마주 앉아 매일같이 천막을 만들면서 많은 대화들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점차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자주 증거 했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 아굴라는 바울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일거리가 없을 때는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 할 때 함께 동행 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 브리스길라가 더 열심을 내어 참여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아내 브리스길라가 하나님의 일에 더욱 충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의 만남은 이들 부부의 삶의 방향, 목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고린도에서의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5절을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 하니" 보십시오! 고린도에서의 바울은 말씀에 붙잡혀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1-5절에 보면 당시 바울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갈 때에 어떤 심정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1절) 아마 바울은 아가야아덴에서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절) 바울은 고린도로 오면서 오직 예수만을 말하며 전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3-5절) 보십시오! 이 성경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를 전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런 것들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된 첫 번째 사람들이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바울에게서 말씀으로 양육 받으면서 그들의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찼습니다. 모든 것을 복음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복음에 불타올랐던 바울의 심정이 그대로 이들 부부에게 옮겨가고,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헌신된 마음이 이들 부부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 전이"라고 말합니다. 영적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심히 기도하게 되고, 전도하는 사람을 만나면 열심히 전도하게 되며, 교회 일에 헌신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교회 봉사에 열심히 헌신하게 됩니다.

이들 부부가 얼마나 복음에 큰 도전과 변화를 받았는지 사도행전 18장 24절 이하에 나오는 아볼로라는 인물이 학문과 성경에 능한 자였으며, 언변도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한의 침(세)례, 즉 윤리적인 설교에 그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아볼로를 자신의 집으로 식사초대하고 함께 교제하면서 바울에게서 듣고 배웠던 ‘하나님의 나라??복음의 능력? ‘성령의 세계?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의 영향으로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의 좋은 설교자가 되어 고린도 교회를 크게 부흥시킬 수 있었습니다.

Ⅳ. 복음에 헌신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평신도로서 하늘나라 확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아굴라 부부가 바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양육 받고 훈련받는 일에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말씀으로 양육 받는 일, 예배의 헌신, 기도의 헌신, 제자훈련 등을 통해 좋은 믿음의 일군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직분을 수여한 일이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받고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영향력을 잃어 가는 것은 성도들이 말씀의 권위와 말씀의 능력을 잃어버린 채 외형적인 봉사와 헌신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 직분이 곧 믿음의 신분과 신앙의 열정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본질을 상실한 채 겉껍데기 신앙인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기전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말씀의 본질을 회복하는 회개운동,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개인주의 적이고, 이기적인 신앙,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크다고 성도가 많다고 그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다 훌륭하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작은 개척교회에서도 말씀으로 잘 훈련받고 양육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바울의 기도 후원자로 끝나지 않고 바울의 물질적 후원자가 되어 바울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장 18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할 때 아굴라 부부도 함께 동행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닙니다. 아예 이사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돕기 위해 사업을 정리하고 함께 에베소로 향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의 사업도 정리할 수 있는 이런 용기와 결단을 가졌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새롭게 집을 장만하여 이사하는 교우들 중에 "제가 이사하는 것은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니면 "제가 이사하는 것은 교회에 좀 더 헌신하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신앙생활을 위해 이사한다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또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신앙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면서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직장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일에 매주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더욱이 취업이 바늘구멍처럼 어려운 요즈음 상황 속에서 주일을 성수하기 위하여 좋은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니고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직장이 주님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자기들의 삶의 현장까지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주님께 헌신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아시아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라고 기록합니다.

보십시오!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브리스길라 부부도 로마에 있었습니다. 이때도 그들의 집에 교회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들 부부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나자 다시 바울과 함께 로마로 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로마서 16장 3절에 보면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4절에 계속 말하기를 "저희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이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이들 부부는 바울에게 "바울 선생님 당신을 위해 우리가 목숨까지도 내어놓겠습니다. 그러니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 하십시오" 하고 말했을 것 입니다.

000교회 안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같이 주의 종들에 대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늘찬양교회 속에 필요한 일은 말씀과 찬양사역의 확장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여 목사님과 함께 동역 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당당하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이 헌신하는 평신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Ⅴ. 결 론

브리스길라아굴라 이 두 부부는 천막제조 사업으로 인해 많은 물질과 부를 누렸지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면서 낙심한 사도 바울을 도와 물질과 함께 거처할 처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순교자의 길을 걸었고 심지어는 아볼로에게까지 복음을 가르칠 정도로 두터운 믿음과 말씀의 깊이를 가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평신도의 길을 걸어가면서 두 부부는 서로 격려해 주고 도와주며 주의 종과 교회를 섬겼습니다.

우리도 주의 종을 도와 목숨까지도 내어 드릴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물질과 직장과 가정과 명예에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쓰고 남은 것만 드리고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여 드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교회 일은 교회 일이고 목사는 목사 일이고 나의 일은 나의 것입니까?

진정 우리 늘찬양교회가 성장하며 믿음 안에서 한 지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오른팔이 되어 드리고 또 성도들 중에 어려움 당하는 사람은 없는가를 살펴보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 보답하는 일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섬기는 동역자가 됩시다. 주님의 동역자로 살고, 영광스런 하늘나라에 자랑스러운 이름이 기록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