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람함과 엘리에셀의 동역 ♧
창 24:1-9,2013.09.29.늘찬양교회
아브라함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에서 그림자처럼 아브라함과 한 평생을 함께 살면서 한 때는 종으로, 한 때는 동역자로서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한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고 아들이삭을 위하여 며느리를 구하러 떠나간 엘리에셀의 사역은 우리에게 충성스러운 종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의 동역은 여러 모습이 있지만 오늘은 커플매니저가 되어 주인 아브라함에게 충성하는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엘리에셀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이 가장 신뢰하는 종이자 조력자였고 의논대상자이었던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창 24:2,5,34,59절). 아브라함은 종 엘리에셀을 무척이나 신뢰하였고 굳게 의지하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지 창세기 15장에서는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으려 까지 하였습니다(창 15: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태를 열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의 생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디발 장군이 요셉에게 집안 모든 소유를 맡겼듯이 노종(老鍾) 엘리에셀에게 집안 모든 소유를 다 관리하며 관장하는 사명을 맡겼습니다. 엘리에셀은 집안의 모든 소유를 관장하면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축복하시고 창대(昌大)케 해주시는 모습을 체험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와 싸우면서 모세가 팔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 장면을 통하여 전쟁이 사람에게 속하여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듯이 엘리에셀도 여호와 하나님께 날마다 제사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보시고 이 모든 번창(繁昌)의 축복을 허락하셨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든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독자 이삭과 그의 종들과 가축들은 풍요롭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며 은혜 속에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127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하고 막멜라 밭 굴에 장사되었습니다(창 23:1). 어머니 사라가 죽고 난 뒤 이삭은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삭의 말수는 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으며 바깥출입도 자제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가 어깨조차 축 늘어진 채 걷는 모습은 너무나 딱해 보였습니다. 이 같은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도 많이 먹어 늙었음으로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때도 되었다 싶어서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아들이삭의 혼례(婚禮)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종이자 조력자이며 의논대상자이었던 노종(老鍾) 엘리에셀을 조용히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기에게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특별한 맹세와 행동을 요구합니다.
Ⅱ. 맹세하는 엘리에셀
본문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네 손을 내 환도 뼈 밑에 넣으라”(창 24:2)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도 뼈 밑은 사타구니 깊숙한 곳입니다. 이는 남성의 상징이며 생명의 샘이고 종족 번식의 기관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백성인 것처럼 “네가 이제 특별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믿음의 종족을 번식키 위한 일로 내 아들 독자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여야겠는데 이 땅 가나안 족속으로는 안 된다 너는 내 고향으로 가서 그 족속의 딸 중에서 한 여자를 택하여 며느리로 삼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와 더불어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여호와께 맹세하라“(창 24:2-4)하며 할례의 하나님! 선민을 구별하시고 부르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하여 약속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까지 행동하며 부탁하는 명령의 속뜻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종은 만약을 대비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인의 고향 땅으로 가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딱 맞는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내었다고 할 때 만일 그 여자가 부모를 떠나 아브라함과 이삭이 사는 곳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 경우 이삭이 그 여자가 사는 곳으로 가서 살게 해도 되겠습니까?”(5절)하고 묻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그리고 단호하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다.”(6,8절)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아브라함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하심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셨다(7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께서 명하여 오게 하시고 살게 하신 언약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뭄으로 인해 가나안 땅을 두 번이나 떠나는 대 실수를 범하였지만 언약의 땅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옛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7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반짝이는 뭇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출 32:13) 약속하신 말씀을 통해 할례 받은 자손이 번성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순적이 며느리를 만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여호와 이레’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따라오려고 하지 않거든 그 여인과 나의 맹세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내 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8절).
요약하면 땅과 씨(자손)와 동행에 대한 분명한 약속과 맹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땅은 약속의 땅 즉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는 거룩한 씨 즉 거듭난 백성을 말하며 그곳에서 부름의 초청을 받고 누릴 신부의 상급과 축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귀한 만남의 자리에 연결시켜주는 사명자가 바로 거룩한 결혼상담관리사 즉 커플매니저
의 역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플매니저는 아무나 만남을 주선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가정들끼리 연결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주례를 할 때에 믿음의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주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믿지 않는 경우에는 또 합니다.
이렇듯 커플매니저의 역할은 너무나도 귀중하고 중요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Ⅲ. 기도하는 엘리에셀
창세기 24장 10절에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약대는 낙타를 가리키는데 그 당시 낙타는 값이 대단히 비싸고 귀한 동물이었습니다. 이렇듯 엘리에셀은 주인의 아들이삭에게 맞는 최고의 배필을 얻기 위해 낙타와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기록되어있듯이 “열 필의 약대를 성 밖 우물곁에 붙들어 메우고 저녁 때 인지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성의 모든 여인들을 다 만나볼 수 있는 장소인 우물가를 찾아간 것도 엘리에셀의 지혜로움을 보여줍니다. 엘리에셀은 그가 찾는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12-14절)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신앙심도 엿볼 수 있지만 또한 여인을 고르는 그의 안목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여자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여자로 알겠다고 말했습니까? 14절을 다시 봅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물 한 모금을 청할 때 흔쾌히 허락할 뿐 아니라 낙타들까지도 물을 먹이겠다고 스스로 나설 만큼 마음씨 착하고 아량 있고 상대방의 필요를 미리 헤아릴 줄 아는 사려 깊고 사랑이 많은 여인을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로 알고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엘리에셀이 왜 이런 기도의 제목을 드렸을까? 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주인 아브라함을 모시면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넓은 아량과 사랑의 모습을 눈여겨 보아왔습니다. 주인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종들이 들녘에서 양떼들에게 먹일 초장으로 서로 싸우며 다투는 것을 보고 조카 롯에게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하면서 땅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면서 엘리에셀은 주인의 넓은 아량과 사랑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 여호와께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핑계로 “의인 50인 명을 찾으면 … 45명,40명,35명,30명,… 의인 10명을 찾으면 멸하지 마옵소서!“(창 18:27-32)하며 자신의 체면과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매어 달리는 모습에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아브라함의 구령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이상과 뜻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는 며느리가 되려면 적어도 말 못하는 짐승에게까지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물을 줄 수 있는 따뜻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가진 여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나 되는 낙타에게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물을 떠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앉아 있는 유림이와 정석이가 마시는 물의 양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보다 짐승이 물을 더 많이 마십니다. 그래도 한 두 마리라면 자원하여 물을 떠다 줄 수도 있겠지만 열 필이나 되는 그 무지막지한 낙타에게 물을 떠서 날라다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서 매번 식사를 하는데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식대비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식사 모임에 참여하는 숫자가 교수님까지 합쳐서 13명입니다. 그런데 참여한 숫자가 적은 날에는 서로 앞 다투어 돈을 내겠다고 나서지만 참여 숫자가 많은 날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미루는 것을 봅니다. 어차피 한번은 내야 하는 식사비도 이러하건만 열 필이나 되는 낙타에게 충분한 양의 물을 떠서 마시게 한다는 것은 보통 아량이나 사랑의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고 엘리에셀은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주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기도의 제목을 정하는 엘리에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주님께 올리고 있습니까? 이 점을 깊이 반성해보기를 바랍니다.
Ⅳ. 사심 없는 엘리에셀
엘리에셀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어 바라볼 때 마침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는 리브가라는 여인을 발견하게 되는 데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습니다. 더욱이 리브가는 “보기에도 심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금 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이었더라...”(15-16절)고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에게 기도한대로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나에게 좀 달라 내가 목마르다”(17절)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브가는 엘리에셀이 급히 물을 마시는 모습과 또 우물곁에 매여 있는 약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자원하여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19절)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엘리에셀의 마음은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기도응답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믿고 급히 엎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침착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모든 약대를 위하여 물을 길어다가 구유에 붓고 마시게 하는 장면을 “묵묵히 주목하여 보았다”고 2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엘리에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인도하여 주셨는가의 여부(與否)를 알고자 리브가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금 고리 한 개와 금 손 목걸이 한 쌍을 선물로 주면서 “너는 뉘 집 딸이냐! 그리고 네 부친의 집에 우리가 유숙(留宿)할 곳이 있느냐?”(23절)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리브가가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습니다.”(24-25절)고 친절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엘리에셀은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敬拜)하며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6-27)며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송(讚頌)했습니다.
엘리에셀은 마음씨 착하고 어여쁜 처녀 리브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서 집안 어른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주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복을 받아 창성하게 된 사람임을 말하기를 잊지 않았으며(35절), 특히 그가 온 것이 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된 것이고 리브가를 자기의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신 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48절). 그리고 주인의 집에서 가져온 은 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오라비 라반과 어미에게도 보물(寶物)을 주었습니다.
이에 이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51절)며 흔쾌히 혼인을 승낙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리브가로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여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합니다(55절). 이때 엘리에셀은 "아닙니다. 나를 만류(挽留)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열어 주셔서 순적이 주인의 며느리를 얻게 해주셨으니 하루 빨리 돌아가 이를 위하여 애타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주인님과 그 아들이삭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니 날이 밝는 대로 아침 일찍 떠나야겠습니다.“(56절)며 단호하게 거절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에셀이 브두엘의 집에서 대접하는 후한 상과 음식 그리고 섬김을 받으며 편하게 열흘을 묶고 가도 누가 뭐라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신분과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에셀이 서둘러 아침에 돌아가겠다고 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목적을 이룬 것으로 만족하려는 사심 없는 청지기의 모습과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주인의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충성스런 종의 열정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이런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심 없이 욕심 없이 오직 주의 영광만을 구하며 말씀을 증거하며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목회자 그리고 자신의 주머닛돈을 늘리기 위해
부흥회를 뛰어 다니며, 이 남자 저 여자 대충 소개하여 건수만 늘리려는 커플매니저가 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일에 귀중한 한 몫을 감당하는 커플매니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가정 사역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결혼예비학교를 활성화 시켜야 하고 결혼 119 구조대로 조직되어서 활동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할 수 없이 리브가의 가족들은 리브가에게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58절)고 묻습니다. 이에 리브가는 그 자리에서 "가겠나이다"고 답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하실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고향과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과 똑같은 결단을 하는 리브가의 모습을 통해 그 시아버지에 그 며느리처럼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언약을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리브가를 통하여 언약의 자손을 계속하여 이루어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리브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유모와 함께 약대를 타고 엘리에셀을 좇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서 묵상하고 있다가 엘리에셀과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이삭은 엘리에셀에게 너울을 가리고 있는 처녀는 누구이며, 어디 갔다 오는 것이냐?고 자세하게 물었습니다. 커플매니저이자 아브라함의 동역자 엘리에셀은 그때서야 주인 아브라함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와 또 리브가를 만나서 함께 돌아오게 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이삭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에 마음 깊이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은 리브가를 취하여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인도하여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고 서로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喪事)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창세기 24장 67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어떤 목사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비유하고, 또 이삭을 예수님으로 표상하며 엘리에셀을 보혜사 성령님으로 그리고 리브가는 예수님과 함께 만유를 상속받을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엘리에셀이 보여주었던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위와 행복과 즐거움보다 주인의 즐거움과 뜻과 행복을 기뻐하며 순종하며 헌신하는 엘리에셀의 모습처럼 명분을 가장(假裝)한 사욕을 품은 목회자나 커플매니저가 되지 말고 항상 주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임을 기도로 여쭙고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24장 46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 엘리에셀은 바로 이러한 종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는 종,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을 게을리 하지 않는 종, 사심과 욕심 없이 주의 일을 충실하게 행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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