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166장 싸움은 모두 끝나고

늘찬양 2022. 4. 1. 11:23

https://youtu.be/RF8CjQycc8U

166장 싸움은 모두 끝나고 (156)

고전 15:20, 2022.4.06.늘찬양교회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말씀을 배경으로 이 세상의 악한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동시에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에 찬 어조로 선포하고 있는 부활찬양으로 17세기에 출간된 라틴 성가집에서 발췌하여 1851년에 죤 M.니일이 최초로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싸움은 모두 끝나고의 찬송의 특징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구주로 부활하심으로 모든 원수와의 싸움에서 완벽하게 승리하심을 할렐루야를 처음과 끝에 사용함으로써 승전(勝戰)의 영광이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는 찬양입니다. 더욱이 승리 얻었네”, “깨뜨리셨네”, “살아나셨네”, “문을 여셨네의 과거형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이 완벽한 승리임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의 부활은 어두움의 악한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깬 완벽한 승리의 부활이었습니다.

 

 

1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싸움은 모두 끝나고 생명의 승리 얻었네

개선가 높이 부르세 할렐루야

 

1, 부활은 사탄과의 싸움을 모두 끝내고 예수 생명이 승리하였음을 선포한 날이다.

 

지금 러시아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한 달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루빨리 무고한 생명이 아깝게 희생되지 않도록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인간의 내면에서 사탄이 죄의 분노를 일으키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일에서도 사탄은 내 죄를 기억나게 하며 영혼의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나의 원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내 죄가 사함을 받았으며 살아가면서 짖는 삶의 죄들도 주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면 양털같이 눈같이 희게 씻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죄에서 건짐을 받고 자유로움 속에 평안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부활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55~57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무엇을 뜻하는 내용입니까? 그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를 완전히 사형해도 좋다는 빌라도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여 예수를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다리를 꺾지 아니하여도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무덤에 묻고 돌로 봉인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군병들을 세워 무덤을 지켰지만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과 싸움을 끝내고 완벽하게 예수 생명이 승리하였습니다.

 

사망은 생명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내면에서 죄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고소하며 결박하려 할 때마다 생명의 자녀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내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해방되었고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삶에서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6)

싸움은 모두 끝나고 생명의 승리 얻었네 개선가 높이 부르세 할렐루야 (찬송가 1)

 

예수의 부활은 "내가 이겼다."고 승리를 선언하신 날입니다. 이긴다는 것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나가서 게임마다 집니다. 지는 선수는 선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군대가 전투를 합니다.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겨야 삽니다'. '이겨야 환영받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이겨야 합니다. 코로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더불어 영적인 전쟁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승리합시다. 승리는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영광입니다.

 

왜 낙심하며 절망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낙담이라는 산들을 옮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집시다. 우리 모두 할렐루야! 승리의 개선가를 힘차게 부릅시다.

 

 

2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망의 나라 권세를 주께서 깨뜨리셨네

승전가 높이 외치세 할렐루야

 

2, 승전가를 높이 외치세 사망의 권세를 깨고 약속대로 예수 부활하셨다.

 

사탄·마귀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사망과 생명입니다. 마귀는 질병과 절망과 죽음을 가지고 이 땅에 왔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님은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회생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살아난 이들은 다시 아팠고, 다시 노쇠했고, 다시 병들었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몸, 영원히 쇠하지 않는 몸, 영원히 병들지 않는 몸, 영원히 연약함이 없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20:17).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얼마 전에 미국 뉴스위크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 중에 94%는 신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77%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불과 24%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도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의 탄생은 믿지만, 예수의 부활믿어지지 않는다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하고도 영광스러운 몸으로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한 제자는 대책회의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부활의 몸으로 나타나셔서 손과 발에 박 못 자국을 보이시며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9)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와 엠마오 상의 두 제자, 그리고 게바와 야고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고전 15:5-8).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16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는 500여 명한자리에 모여서 보았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천사들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24:30,1:11,살전 4:17, 1:7)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십니다.

 

프랑스의 회의주의자는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습니다. 결코 무덤 속의 죽음의 냄새, 시체의 썩는 냄새가 아닙니다. 빈 무덤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다시 사신 주님의 냄새를 맡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냄새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진동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망의 냄새가 아니라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온 땅에 부활의 승전가를 높이 외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슬프던 사흘 지나고 주께서 살아나셨네

영광을 주께 돌리세 할렐루야

 

3, 슬픔과 어둠의 사흘 지나고 희망과 생명의 소식으로 다가오신 영광의 주님

 

요한복음 2011절은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로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전에 사람들에게 많은 멸시와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소망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독실한 신앙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있어서 전 소망이요 생명이었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시게 되니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젖어 드는 슬픔과 고독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만나서 마음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가까운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전적으로 쏟아 바칠 만한 애인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마리아의 인생을 선히 지도하며 때때로 충고해줄 만한 후견자도 없었습니다.

 

사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친구요, 애인이요, 선생이요, 후견자와 같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마리아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궁전에서 심판받으실 , 연약하신 몸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가시다가 쓰러지고 거꾸러지실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실 때, 마리아는 밤을 새워가며 울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리고 싶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시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정신없이 울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마리아의 등 뒤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조용하고도 인자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그리고 누구를 찾느냐?"(20:13) 여기서 "어찌하여"란 말은 "이제는 울 만한 이유가 없는데 왜 우느냐?" 하는 뜻입니다. "누구를 찾느냐?" 이 말은 "이미 죽은 예수를 찾을 필요가 없고, 죽었던 예수는 다시 산 예수로 네 앞에 있지 않으냐?" 하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슬픔을 주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죽음 후에 찾아오는 고독입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육신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 버렸을 때, 가슴치고 땅을 치며 슬피 우는 것은 그때부터 찾아드는 고독이란 것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은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이 '고독의 병'이라고 했습니다.

 

슬픔과 고독에 사로잡혀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서서 주님을 뵙는 순간 마리아의 슬픔, 마리아의 고독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만나면 슬픔과 고독과 절망과 좌절이 사라지고 희망과 생명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쁨이 부활의 주님과 함께 여러분속에 넘쳐나기를 희망합니다.

 

 

4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망의 문을 잠그고 생명의 문을 여셨네

부활의 찬송 부르세 할렐루야 아멘

 

4, 사망의 문을 잠그고 생명의 문을 활짝 여신 부활의 주님 할렐루야

 

부활절은 찬송가 4절의 가사처럼 사망의 문을 잠그고 생명의 문을 여신 날입니다.

인류 역사상 부활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유대교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175세까지 장수하다고 죽었습니다. 막벨라 굴에 장사지낸 이후로 그분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80세에 죽었습니다. 그분은 임종 때 "법을 의지하고 나를 의지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구원자가 아님을 직접 밝혔습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그 유골이 여덟 부족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부활한 적이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원조라는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겠다고 예언한 적도 없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전혀 없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은 60세에 군대를 조직하여 메카를 무력으로 정복한 후 62세에 죽었습니다. 이슬람은 늘 칼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했고 지금도 '지하드'라는 성전(聖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호멧의 무덤은 만인에게 알려져 있고,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3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다른 종교들의 본질적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부활의 종교입니다. 더 나아가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후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그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보니까 한 어린 아이가 새장 안에 갇힌 새 한 마리를 몹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그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 아이가 대답을 했습니다.

"좀 괴롭히다가 죽여 버리려고 해요."

 

목사님은 그 새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돈을 주고 그 새를 새장 채로 샀습니다. 목사님은 그 즉시 새장의 문을 열고서 그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 새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그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빈 새장을 들고서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원수 악한 마귀는 우리를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엄청난 대가로 지불하고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포로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 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뜻깊은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참 평안과 기쁨과 자유 함을 누리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후 렴>

할렐루야 *135:1,146:1,150:1,15:11,19:1,4

1

싸움 모두 끝남 *6:13,살전 4:17,딤전 6:12,딤후 4:7-8

생명의 승리 *6:51,54,3:15,6:9,딤후 1:10,

2

사망 권세 이김 *2:24,6:9,고전 15:54-55,딤후 1:10

승전가 높이 부름 *대상 29:11,20:5,고전 15:57,요일 5:4

3

사흘 만에 살아나심 *27:63,8:31,10:40,고전 15:4

영광 주께 돌리세 *9:8,11:36,고전 6:20,딤후 4:18

4

생명의 문 여심 *5:24,14:27,8:2,3:8

 

 

관련 찬송

 

기뻐 찬송하세 159

예수 부활했으니 164

즐겁도다 이날 167

내 주님은 살아계셔 170

사망을 이긴 주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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