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음의 열매 (비유 설교)
갈 5:22-23,약 5:7-11,2022.03.13.늘찬양교회
저희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은근과 끈기」라는 장이 있었습니다. 구한말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성품이 「은근과 끈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계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빨리빨리", "조급증" 일 것입니다. 자판기에서 커피가 다 나오고 불이 꺼지면 컵을 꺼내야 하는데 한국인은 버튼을 눌러놓고 컵을 붙들고 있습니다. 가끔은 튀는 커피에 손을 데기도 하지요. 하지만 반대로 밤이고 낮이고 전화만 하면 무엇이든 빠르게 배달되는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 전문회사가 생겨나서 이런 빠름의 원리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한국을 지상천국이라고 칭하면서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빨리빨리, 날쌔게, 얼른, 금새, 당장, 성큼, 선뜻, 후딱, 속히, 즉시, 신속하게, 잽싸게’ 같은 언어가 생활화되다 보니 신앙생활에서도 조급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가 길면 참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미니스커트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는 유행어가 나왔을까요? 그런가 하면 교회를 다니다가 누군가와 관계가 어려워지면 회복시킬 생각을 안 하고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갈등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기도도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각합니다. 응답이 늦으면 금세 포기합니다. 전도도 쉽게 포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하여 성령의 네 번째 열매는 오래 참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오래 참음이 필요한 이유
1. 오래 참음으로써 믿음에 복을 받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시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험을 싫어하나 시험은 인간에게 있어서 운명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성장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시험을 인내로 극복함으로써 갑절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 인물입니다.
성경에 보면 욥은 하나님 때문에 고난을 겪었습니다. 욥이 고난을 겪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너 욥을 본 적이 있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나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욥을 자랑하십니다. 그러자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많은 재물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지, 만약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셨던 것을 다 빼앗아 보십시오. 욥은 단번에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욥 1:9-11)라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의 몸을 제외한 그의 모든 것에 손을 댈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마침내 사단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하루에 10명의 자녀가 다 죽임을 당하고, 수많은 소와 나귀와 양과 낙타 등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하나님, 하필이면 왜! 저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억울합니다. 우리는 이제 뭘 먹고 삽니까?” 등의 말을 하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 1장 20절부터 23절을 보면, 욥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욥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그는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사단의 1차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 이번에는 욥의 몸을 공격합니다. 욥은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어야 할 만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는 저주를 퍼부어댄 후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끝내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친구들마저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는 오히려 맹렬한 비난을 퍼부어댔습니다. “너에게 분명히 죄가 있으니까 하나님이 너를 벌한 것이다. 이유 없이 네가 이런 고통을 당할 리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회개해라” 그래도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원망치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찬송했습니다.
이처럼 욥은 끝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인내했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인내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이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욥기 4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빼앗긴 것의 두 배를 욥에게 다시 주셨습니다. 욥은 양 14,000마리, 낙타가 6,000마리, 소가 1,000마리, 암나귀가 1,000마리, 등을 소유하게 되었고, 아들 일곱과 딸 셋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2. 오래 참음을 통해 자신의 품격과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보석 감정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보석 감정사를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보석 감정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석 감정 기술을 배우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가장 필요한데, 젊은 사람에겐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자신이 충분한 소질과 열정을 갖고 있으니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끈덕지게 매달리는 그 청년을 본 그 보석 감정사는 그 청년에게 내일 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청년이 찾아오자 보석 감정사는 손바닥에 작은 보석 하나를 올려 주며 “의자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 보석을 보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보석감정사는 청년의 손에 어제의 보석을 쥐여 주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그 청년은 일주일 동안 보석을 보고 있었지만 더는 침묵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님, 전 언제부터 기술을 배우게 됩니까?” 그러나 보석 감정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곧 배우게 될 거야.” 그리고 더 이상의 말도 없이 자기 일만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열흘이 지났을 때 청년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감정사를 찾아가는 것이 낫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보석 감정사가 똑같은 보석을 쥐여 주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지시하면, 청년은 보석을 집어 던지며 이렇게 외치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골탕 먹일 셈인가요?” 그런데 청년이 보석을 집어 던지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어제까지 제가 보고 있던 그 보석이 아니잖아요!” 그러자 늙은 보석감정사가 말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는군.”
기회는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오래 참으시기 바랍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를 온전하게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3. 오래 참음을 통해 삶의 처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학급에서 선생님이 머시멜로 과자를 주고 선생님이 15분 후에 돌아올 것이니까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어린이에게는 머시멜로를 2개를 더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수는 그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반면 철수는 참지 못하고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먹어 버렸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시험을 보았습니다. 초콜릿을 먹지 않고 기다렸던 영수와 철수 두 사람 중 누가 더 점수가 많이 나왔을까요? 결과는 머시멜로 과자를 15분간 먹지 않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평균 210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오래 참는 자에게는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11절을 보세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약 1:12;사 30:18)
미국에 한 판매협회 기관에서 세일즈맨들의 세일즈 기법과 그들의 세일즈 결과들을 연구 조사하여 그 내용을 [비즈니스 위크]라는 경제 전문 잡지에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세일즈맨들의 48%가 물건을 팔기 위하여 소비자들에게 전화를 한 번 하고 25%가 전화를 두 번 하며, 15%가 전화를 세 번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2%가 계속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하지 않고, 여러 번 계속한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출의 80%가 계속 전화하는 12%의 세일즈맨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88%의 세일즈맨들은 너무 조급한 나머지 성취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황만 보면서 금방 포기해 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하고 기다리며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 49:23) 여러분의 미래와 사업, 직장, 자녀교육도, 전도도, 인격의 성장도 이루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하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Ⅱ. 어떻게 참을 수 있는가?
1.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신뢰하고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신뢰하고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여전히 악과 부조리가 있고 모든 일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악인이 성공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선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때 불평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인하여 투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여호와께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 37:1-5)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정확한 일을 하신다고 믿고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때로 내가 기대했던 때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가 달라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옳았습니다.
사울 왕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지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의 핵심은 하나님의 때를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자기 자신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급증에 시달리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성품은 왕으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그런 연유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2. 나 자신을 향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인 양 낙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나무도 처음엔 작은 싹에서 시작됩니다. 자라고 잎이 피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인격이 성숙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인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우석대 소방시설관리사반이 개강을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했던 급우 중에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미리 간파하고 학생 수준에 맞게 기사와 관리사반을 선택하여 수강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학교에 건의하여서 올해부터는 그렇게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그만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65세의 나이에 일하는 목회자로 일과 목회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5번째 소방시설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반드시 소방시설관리사 시험에 합격하여 더 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열심히 달려갈 것입니다.
3.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버튼(E.D. Burton)은 오래 참음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억울한 상황, 곤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확고히 신뢰하고 기다리는 삶의 태도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오래 참고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상대방이 정의롭지 못하고 미숙하더라도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과정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견디어내는 인간적 특성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힐 때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칼을 뽑아 대제사장 시종의 귀를 잘랐으니 얼마나 용감하고 씩씩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거스리는도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성급한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을 베드로는 몰랐던 것이지요.
어버이가 된 사람들은 자녀를 향하여 오래 참으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조급증과 지나친 기대 때문에 자녀의 성품이 무너집니다. 그들 인생의 비전과 재능이 무너집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성내지 않으며 모든 걸 참으며 모든 걸 견디느니라.”(고전 13:4-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Ⅲ. 결 론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시요, 주권적인 섭리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가뭄이 들 수도 있고, 홍수가 날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고, 더울 수도 있고, 눈이 올 수 있고, 바람이 불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면 오래 참음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다 주장하셔서 결국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참음의 열매가 성품으로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 번이나 꽃을 왕복하여 얻은 것입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지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8백 번이나 작품을 써본 후 그의 나이 66세가 돼서야 완성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는 오래 참음의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는 사람을 인정하시고, 복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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