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영적 지도력의 심리학적 이해

늘찬양 2006. 11. 15. 10:13


영적 지도력의 심리학적 이해
 
명성훈  - 
 
  
지도자의 자기개발을 중심으로

지도력에는 크게 자기 자신을 개발하는 개인적 지도력(personal leadership)과 단체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능력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적 혹은 공적 지도력(public leadership)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개인적 지도력은 비공식적이고 내향적이며 심리적인 반면 공적 지도력은 공식적이고 외향적이며 사회적이다. 최근의 경향은 공적인 지도력에 앞서 개인적 지도력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가고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사회적인 지위나 가치의 획득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가치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신의 마음과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의 영적 지도력도 외형적인 교회성장이나 괄목할만한 업적만 있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남을 다스리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하며 큰 일을 하기 전에 가정이나 인간관계같은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영성은 확실하고 성령의 은사는 충만한데 마음이 병들고 정서가 불안한 지도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양떼들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고 피해를 당하는지 모른다. 부정적인 자화상 때문에 영적인 사역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지도자와 생각의 개발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 하는 것은 리더십 행위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행동의 시작은 마음 속에 품은 생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생각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아는 상식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심으면 말을 거두게 된다. 즉 자기가 품은 생각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각에 따라 결정된 어떤 말을 자꾸 심으면 그 말에 따른 어떤 행동을 거두게 되고 그 행동을 지속적으로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사람의 운명을 거두게 된다. 생각과 말을 지키는 것이 의식화라면 행동과 습관을 지키는 것은 생활화이다. 결국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의 “의식화”와 “생활화”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에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신앙의 의식화 작업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 즉 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신앙의 생활화이다.(롬12:1-2)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의식화(신학)와 올바른 생활화(윤리)가 있을 때 가능해진다. 오늘 우리들의 가장 안타까운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하게 의식화되지 못한 점과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생활화의 결핍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아쉬운 점도 바로 말은 잘 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생활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생각이 바르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마음 속에 품은 동기가 좋고 바른 것이 되어야 모든 일이 잘 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일을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하는지 그 근본적인 행동의 동기가 중요한 것이다.

창조의 기초로서의 생각
인생의 모든 것은 두번 창조된다(All things are created twice). 정신적으로 창조되고(mental creation), 물질적으로 창조된다(physical creation). 정신적인 창조는 생각의 창조이다. 생각의 창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다. 반면에 물질적인 창조는 가시적인 행위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지을 때 먼저 설계사가 설계를 하여 아주 자세한 것까지도 도면에 그리게 된다. 이 설계 혹은 계획(planning)이 생각의 창조이다. 그 설계도가 올바르고 좋아야 훌륭한 건물의 건축(construction)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는 설계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창조적인 생각이 없으면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생각은 안경의 렌즈와 같다. 렌즈가 다르면 그 렌즈를 통해 보는 사물도 달라진다. 신앙의 생각이 다르면 하나님의 뜻을 보는 관점과 적용이 달라진다. 생각이 다르면 있는 그대로의 실재(reality as it is)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대로의 실재(reality as we are)를 체험하게 된다. 같은 하나님이라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좋으신 하나님으로 체험될 수 있다. 같은 성경 말씀이라도 사람의 생각(신학)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여기서 건전하고 복음적인 신학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다른 말로 인식(perception), 패러다임(paradigm), 정신적 지도(mental map), 혹은 세계관(worldview)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용어는 다를지라도 모든 행동의 기초가 되는 사고 혹은 인생관이 바뀌지 않는 한 창조적인 역사는 일어나기 어렵다 예수를 믿는 사건도 회개 즉 생각이 바뀌어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사도바울은 영적인 지도자가 영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롬8:5-7) 영적 지도자는 육신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영적인 생각의 본질
그러면 영적 지도자가 늘 가져야 할 영적 생각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각으로 가득차야 한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2:3-4) 둘째로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항상 효과적인가를 생각하여 열매를 남기는 거룩한 실용주의자가 영적 지도자이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들과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22-23) 마지막으로 낙관적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 예언하시기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약속하셨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으면서 칠전팔기의 자세로 나아가는 자가 바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도자이다. 지도자는 절대절망에서 절대희망을 말하는 자이다.

지도자의 성공의식
지도자는 항상 성공을 생각하는 자이다. 성공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 성공을 체험하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도 함께 성공하도록 격려하는 자이다.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잠4:23) 실패의식을 가진 자가 성공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다른 사람을 성공시킬 수 없다. 실패의식이 바뀌어 성공의식을 갖게된 자만이 성공의 가능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참 성공이냐 하는 점이다. 성공에는 직업적인 성공과 생활의 성공이 있다. 직업적인 성공은 자신이 맡은 일이나 사역에서의 성공이다. 직업적인 성공은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는 공적 성공(public success)이다. 반면에 생활의 성공은 개인의 만족과 가정의 행복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내적인 혹은 사적인 성공(private success)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업이 잘되고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돈이나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그러한 사회적 혹은 공적 행복을 많이 소유하고 또 소유하도록 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든 맥도날드가 지적한대로 인간은 자신의 내면적 성공없이는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업이 성공하고 정치적으로 위대한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온전치 못하고 가정이 행복하지 못한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도자가 아니며 성공한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적 혹은 영적인 성장없는 물질적 번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이 될 수 없다.
참 성공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취하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성공도 함께 가지는 것이다. 외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공도 누리는 것이다. 오히려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이 더 보람과 의미를 전달해 줄 경우가 많다 기초가 무시된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우리의 기초는 하나님이 주신 본성의 변화이지 성공의 원리나 방법론의 마스터가 아니다.
하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성공한 사람을 가리켜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1, 23)이라고 하셨다. 착하다는 것은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충성되다는 것은 효과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착한 것(본성)이 충성된 것(기술)보다 먼저 온다. 성공의 기초는 행함(doing)보다 존재(being)에 있다.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냐가 성공의 더 깊은 기초를 제공해 준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됨됨이가 우리의 언행보다 더 탁월한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성공을 위한 가치관의 변화
여기서 우리는 가치관의 변화(paradigm shift)가 주는 위대한 힘을 발견하게 된다. 참된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성공을 향하여 달음질하기 전에 먼저 성공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진리 곧 올바른 정신적 원리를 내면화할 때 영적 성장이 일어나게 되며 그러한 영적 성장 위에 물질적인 성장을 쌓아나갈 때 온전한 성공과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지도가 잘못되면 아무리 운전을 잘 해도 목적지에 찾아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의 지도(mental map)가 틀리면 성공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지도자는 올바른 마음의 지도를 가져야 한다. 마음의 지도 즉 인생관 혹은 가치관을 올바로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근본원리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원리로 나의 마음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원리는 방법론과 다르다 방법론은 바뀔수 있어도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 영원한 가치를 가지도록 해주는 행동을 위한 지침이 곧 원리이다. 원리에 충실한 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원리는 성공을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 관점 마음의 지도 혹은 패러다임이 올바르고 좋은 원리에 따르도록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좋은 원리에 따르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가 성공적인 삶을 살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을 성공시키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성공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무엇을 원한다면 먼저 그 무엇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행복한 결혼을 원한다면 행복한 아내와 남편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자녀를 원한다면 먼저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성장하는 교회를 원하면 먼저 성장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공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참된 성공으로 인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예수님의 성공원리를 배워 자신의 잘못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의식에서 성공의식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것이 성공이라는 성공의 기본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방법론 중심에서 원리중심으로 생각하는 것(the principlecentered paradigm)이 필요하다. 기술중심에서 본성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밖에서 안으로가 아닌 안에서 밖으로(insideout)변화되는 역사가 있을 때 하나님이 쓰시는 효과적인 리더십이 개발될 것이다. 지도자는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다스리는 자이다.

지도자의 창조적 반응
지도자는 매사에 창조적 반응을 하는 자이다. 창조적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창조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거울(social mirror)에 비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자화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회적 거울이란 다른 사람들 혹은 사회적 환경으로 말미암은 관점에 비추인 자화상이다. 본래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화상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사회환경으로부터 영향받은 자화상이다.
사회적 거울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유전적 운명주의(genetic determinism)는 자신의 부정적 운명을 조상탓으로 돌리는 자화상이다. 둘째 정신적 운명주의(psychic determinism)는 어렸을 때 혹은 과거에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는 경우이다. 셋째 환경적 운명주의(environment determinism)는 인간이 성장한 환경과 문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었다고 인정하는 부정적인 자화상이다.
영적인 지도자 효과적인 지도자는 이러한 운명주의를 극복하는 자이다. 자극이 있으면 반응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극이 있을 때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많은 경우 외부에서 다가오는 자극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눈만 뜨면 부정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환경적 자극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극에 무방비 상태로 반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감정인가 가치인가
인간이 위대한 것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극이 있을 때 본능이나 감정으로 반응하는 대신에 이성과 꿈을 가지고 창조적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행동은 조건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결정의 산물이다. 어떤 자극이 있을 때 감정으로 반응하는 대신 지도자 혹은 효과적인 사람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의지력과 양심과 상상력과 자각(selfawareness)의 힘을 사용하여 환경의 자극을 정복할 수 있다.(창 1:28)
감정적인 반응은 조건의 산물이지만 창조적인 반응은 결정의 산물이다. 조건의 산물은 감정(feeling)에 근거하지만 결정의 산물은 가치(value)에 근거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이 아닌 가치에 자신의 충동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창조적 인생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왼 뺨을 때릴 때 나도 한 대 올리는 것은 감정적 반응이다. 그러나 오히려 오른 뺨을 갖다 대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가치를 인정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창조적 반응이다. 불행한 자극에 불행한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자극이 오더라도 내 안에서 결심을 하고 행복한 반응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불행한 자극에 행복하게 반응할 줄 아는 자이다. 토인비가 말한대로 파괴적 도전에 창조적인 응전을 하는 자이다.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의 동의없이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믿는 자이다. 내가 상처받은 것은 남이 나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이라기 보다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어떠한 비난과 악담도 나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간디가 말한대로 “내가남에게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나의 자긍심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감정적 반응을 하는 자와 창조적 반응을 하는 자는 그 말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감정적 반응을 하는 자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나 창조적 반응자는“다른 길이 있나 찾아보자”고 말한다. 감정적인 반응자는 “내 생겨먹은 것이 이런 걸 뭐”하지만 창조적 반응자는 “한 번 다른 방식으로 해 보자”고 말한다. 감정적 반응자는 “그 사람 때문에 내가미치겠다”고 쉽게 불평하지만 창조적 반응자는 “내 감정을 다스려야지”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감정적 반응자는 “나는 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것을 해야지”라고 말하지만 창조적 반응자는 “해 보자 정말 해보고 싶다”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감정적 반응자는 “만약에했더라면”(If only)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창조적 반응자는 “지금 해보리라”(I will)고 어려운 일에도 도전하는 자이다.

염려와 영향력의 원
감정적 반응의 부정적 에너지는 인간 마음 속에 있는 염려의 원(circle of concern)을 확대시킨다. 그결과 모든 일에 더욱 부정적이 되고 소극적이 되어 지도자로서의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창조적 반응의 긍정적 에너지는 영향력의 원(circle of influence)을 확대시킨다. 영향력의 원이 점점 커질 때 웬만한 삶의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도자는 이 영향력의 원이 큰 자로서 추종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넉넉하게 해결할 줄 아는 자이다. 지도자란 원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요 문제를 해결하는 자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다른 방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와 전혀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의 세가지 중 하나이다. 지도자는 이 세가지 차이를 잘 분별하여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그 문제가 있더라도 행복하든지 창조적 반응을 자신이 먼저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와같이 하도록 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지도자는 다음의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다. “주님 변화시킬 수 있고 또 변화되어야 하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두가지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멘”

리더십의 목적은 올바른 가치의 실현
지도자는 일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정복하는 자이다. 인생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보면서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영적인 지도자는 효과없는 분주함과 목적없는 성공을 배격해야 한다. 많은 지도자들이 성공의 사다리에 빨리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먼저 성공의 사다리를 어떠한 벽에 기대어 받쳐놓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사다리에 높이 그리고 빨리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못있어 사다리가 쓰러진다면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실패의 충격은 크기 마련이다.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올바른 길로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가시적 업적보다 영적 사명이 더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물질적인 창조보다 정신적인 창조가 앞서야 하는 것이다. 성공이란 효과적인 리더십(사다리를 올바른 벽에 세우는 것 혹은 경주자가 올바른 트랙에 들어서는 것)에 능률적인 관리(행복과 성공의 사다리를 잘 타는 것 혹은 경주자가 빨리 잘 달리는 것)를 더한 것이다. 참된 성공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성공이다(Real success is success with self). 사도 바울도 자신이 열심히 쓰임을 받을 때마다 버림을 당할까 늘 염려하면서 사명의식을 더욱 고취시켰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는 삶의 철학 혹은 인생의 헌법이 삶과 사역의 기초를 이루어야 한다. 사명감(sense of mission)은 모든 성공과 행복의 기초이다. 사명감이 확실한 지도자는 삶의 중심점(center)과 지지요소(lifesupport factors)가 분명해진다. 영적 지도자의 인생중심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가치가 아닌 일시적 가치를 자신의 삶의 중심점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삶의 중심점은 물질, 일, 소유, 쾌락, 친구, 원수, 교회봉사, 자아, 배우자, 가정이 되고 있다. 다 가치있고 행복한 삶의 요소가 되지만 절대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하고 불변한 삶의 중심원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인간의 필요에 앞서 하나님의 필요를 먼저 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여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 인간적인 필요가 온전하게 채워지는 것이다.

인생사명선언서
철저한 자기만족의 삶은 철저한 자기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마약이나 술 혹은 섹스에 중독된 자들의 삶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기 전에 먼저 인생의 프로그램을 짤 줄 알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명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가 지나고 유행이 달라져도 영원히 달라질 수 없는 삶의 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성경적 원리가 삶의 중심점이 되어야 자신을 정복하고 남을 정복할 수 있다. 지도자는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지도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인생사명선언서(A Personal Mission Statement)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명선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 수신기인 양심에 귀를 기울여 무엇이 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증을 거쳐야 한다. 그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개인적인지 긍정적인지 현실적인지 가시적인지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한 목표와 역할이 무엇인지도 기술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이러한 사명선언서를 마태복음 22장 34절40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작성해 보았다.
“내 사명은 성실하게 사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삶을 위해서 나는 사랑과 희생과 용기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이 사명을 위한 목표는 첫째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내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네 몸을 사랑하라) 셋째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성공시키는 것이다.(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러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나는 남편 아버지 아들 및 형제 그리스도인 이웃 사역자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해 나갈 것이다.” 인생의 살맛나는 감정이 소속감 가치감 그리고 사명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로(소속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가치감), “ 하나님의 일을(사명감)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자가 바로 영적 지도자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글로 쓸 수 있는 자이다. 지도자 개인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교회같은 조직체도 이와같은 사명선언서가 있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사명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