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비를 내리는 엘리야의 기적

늘찬양 2014. 12. 7. 15:27

 

비를 내리는 엘리야의 기적

왕상 18:41-46,2014.12.07.늘찬양교회

 

 

지난 시간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850명과 대결하여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장면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850명을 끌고 기손 시내로 내려가서 저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왕상 18:40). 그렇다면 엘리야 선지자는 왜! 이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죽여 수장시켜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싸움이 그저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정도의 힘 싸움이 아니라, 지난 3년간의 무서운 가뭄의 재앙이 누구의 잘못으로 인하여 일어난 심판의 재앙인가를 판가름하는 영적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야를 비롯하여 여호와를 신앙하는 자들이 농경 신인 바알 신을 진노케 함으로 인한 재앙이냐? 아니면 바알 숭배에 빠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진노케 함으로 인한 재앙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누가 참 신인가?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구속사적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고 따르도록 가르쳤던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다 죽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울러 엘리야는 이 같은 통쾌한 승리를 통하여 그리고 저들의 죽음을 통하여 조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서운 것인가? 를 분명하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대승(大勝)을 거둔 이후 곧바로 아합 왕에게 말하기를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이제는 마음 편히 음식을 잡수소서! 이제부터 큰비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왕상 18:41)고 말한 것입니다. 왕을 위로하고자 또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비 내림을 통하여 여호와만이 각종 문제와 고통을 해결해주고 참 다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신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보여주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아합 왕과 함께 올라가서 비의 응답을 위해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사자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하사 36개월 동안의 가뭄을 종결시키시고 큰비를 내려 주셔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삶의 전선에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아보사 능력과 이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 속에서 살지 못하고 방황하며 유리하며 고통 하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과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고 날마다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과 권능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온 땅위에 담대하게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엘리야가 선지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비를 내리게 하였는가? 를 살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를 중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계속하여 엘리야와 같은 이적이 나타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편만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모든 우상을 제거한 후에 드린 엘리야의 기도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중 가장 패역한 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이 하나님의 전을 헐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므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스라엘 땅 전역에 3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도랑의 물이 말랐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다 마실 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없애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의 중간에 서서 머뭇머뭇 거리며 바알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려고 했던 악한 행동을 통회자복 하도록 하는 범국민적 회개운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진노와 심판을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 싸움을 통해 참 하나님이 누구인가? 를 알아보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갈멜산에서 8501의 영적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드렸듯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쌓은 제물에는 불이 내리지 아니하였고 엘리야의 제단에만 불이 내려서 결국 거짓말을 일삼고 국가의 녹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던 거짓 선지자들이 기손 시냇가에서 때죽음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더불어 지난 시간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제단에 불을 내리기 전에 먼저 단을 수축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잃어버리고 무너진 하나님과의 단 즉 예배의 단을 먼저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예배생활을 통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엘리야와 같은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나타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심령(心靈)에서 통회자복(痛悔自復)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 마음속에 있는 각종 우상과 죄악 미움 분노 질투 욕심들을 다 벗어버리고 성결함과 진실함으로 주님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위로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구하고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일이 없이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누리며 늘 찬양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듯 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속에 우상숭배가 가져다주는 죄악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가? 를 확실히 깨달아 알게 하였으며 또한 통회자복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영적 회복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단군 상의 숭배가 가져다 준 이 땅의 심판을 선포하라)

 

 

. 겸손함으로 매어 달린 엘리야의 기도

 

두 번째로 엘리야는 겸손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42절에 기록된 엘리야의 기도의 모습을 눈여겨보십시오!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창조주 즉 내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후 보라! 나의 능력을 저들이 저렇게 자기의 몸을 찢어가며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내리지 못했지만 나는 이렇게 하늘로부터 불을 내렸다. 그런즉 나의 위대함을 알라 그리고 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말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속에 파묻고 겸손히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얼굴을 무릎 속에 파묻는 것은 그만큼 자기의 모습을 숨기고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엘리야의 간절함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겸손함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고백 입니다.’

 

계시록 4장과 5장을 보면 보좌를 옹위하고 선 모든 그룹들이 또 24장로들,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보좌에 던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영광 앞에서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함과 거룩함의 상징인 천사들, 그룹들이 겸손했다고 할진대 우리 인생들이야 당연히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 ‘겸손 백 번 천 번을 외치면서 주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하고 겸손함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함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야고보서 517절과 18절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했습니다. 엘리야가 이러한 이적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와 다른 어떤 재능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우리처럼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집을 나설 때에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까? 엘리야처럼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겸손의 기도를 드렸습니까?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새해 일 년을 승리코자 할 때 우리 모두는 "기도하자. 기도하자. 열심히 기도하자. 겸손하게 기도하자" 이런 내용의 표어로 걸고 서라도 기도하기를 힘쓰는 여러분의 모습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끈질기게 부르짖는 엘리야의 기도

 

세 번째로 엘리야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우리 모두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기도의 응답을 바랍니다. 때문에 얼른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할 경우 "기도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어 에라 그만두자" 이렇게 낙심할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있었다면 엘리야에게서 기도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사환에게 무슨 변화가 없느냐

?고 물었습니다. 사환의 말이 "아무 것도 없나이다." 고 대답했습니다. 창피해서 포기할 만 한데 엘리야는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끈덕지게 계속해서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계속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사환에게 일곱 번씩이나 다시 가서 보고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기까지 엘리야의 모습은 얼마나 애절하고 안타까웠을까요? 그리고 사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끈질긴 엘리야의 기도 앞에 하나님은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소낙비를 내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엘리야는 그것을 소낙비의 징조로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크게 되지 않습니다. 모든 큰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냇가가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됩니다.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새가 깃들만한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이렇게 작은 구름이었지만 엘리야는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믿었습니다. “저것이 바로 큰 비의 시작이다.”고 즉각적으로 믿어버립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한 밤중에 떡을 빌러 온 한 친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여행 중에 자기를 찾아온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서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떡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든 친구는 귀찮아하면서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들었으니 일어나 떡을 줄 수가 없노라" (11:7) 이 때에 이 친구 포기했습니까?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포기가 없습니다. 도중하차가 없습니다. 기도에 방학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끈덕지게 떡을 달라고 졸라댔을 때에 "이대로 두면 저가 나를 계속해서 귀찮게 할 것이니 내가 네게 떡을 주리라"(8) 그리고는 결국 떡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끈질긴 기도가 역사를 만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끈질긴 기도로 매사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응답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엘리야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약속한바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81절을 보면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에 이 약속의 말씀이 다가옵니다. 기도할 때에 평안히 다가옵니다. 응답의 확신이 다가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고 환상이나 예언이나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기도원 원장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 속에서 문제성 있는 물질이 오가고 거짓 예언이 나오고 오해가 빚어지고 상처가 생깁니다. 전에 있던 선교원 오선생님은 결혼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청주에 있는 모기도원 원장에게 부탁할 때에 그분의 말이 이 사람은 짝이 아니다. 결코 결혼이 성립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만나지 말라.”고 해서 옥신각신 남자와 다투다가 결국 남자 모르게 이곳을 떠나지 아니했습니까?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 같은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로 서두르거나 조급해 해서는 안 됩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러한 응답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환으로부터 "아무 것도 없나이다."(43)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3)고 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에 이르러서 사환이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44)고 보고를 합니다. 그때 엘리야의 말이 무엇입니까? "아합 왕이여 큰비가 내릴 것이니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타고 가소서"(44) 이 얼마나 엄청난 소리입니까? 이 얼마나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리입니까? 36개월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안 왔는데 그 작은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고 그렇게 큰비가 내릴지 어떻게 호언장담(好言壯談)하며 왕에게 얼른 마차를 준비하여 내려가소서!”(44)하고 말을 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이런 용기와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수 없는 영성훈련과 말씀훈련을 통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11:1) 엘리야가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조각을 보고서 아합 왕에게 마차를 준비하여 급히 내려가소서! 말한 후 45절입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45) 믿음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드시 이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말씀의 확신이 왔을 때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의심의 마귀가 도망갑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믿게까지는 잘합니다. 그러나 선포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만에 하나 공수표를 띄게 되면 그 창피를 어떻게 피하나? 하는 염려를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선포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염려를 이기고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한번 선포해보십시오...그리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나아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아합 왕 앞에 누가 참 신인가? 갈멜산에서 겨루자(19)고 선포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44)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선포의 능력을 체험해 보십시오...조금 힘들고 어렵지만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함은 물론 믿음의 확신이 왔을 때 담대하게 선포하여 내 안에 의심의 마귀가 자리를 틀지 못하도록 만들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1:16),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24)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비가 내리도록 한 엘리야의 기도가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고난의 훈련과 겸손함 그리고 끈질긴 기도와 체험의 영성 그리고 담대한 믿음의 선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영광의 기적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저와 여러분의 목회에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순종과 섬김의 훈련을 받으십시오...그리고 기도의 깊이와 영성을 가지십시오... 그런 후에 담대함으로 믿음을 선포하고 능력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번해서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마시고 또 큰일에서만 힘을 쓰지 말고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믿음을 사용해보십시오. 한두 번 기도로 끝나지 말고 끈질긴 기도를 행하고 믿음의 고백을 자꾸 사용함을 통해 놀라운 능력과 체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헛된 예언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분의 통로 일뿐입니다. 겸손하십시오!...겸손과 순종이 여러분을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머물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많이 만들어내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