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하프타임을 통한 변화(4)

늘찬양 2013. 6. 30. 13:47

♣ 하프타임을 통한 변화(4) ♣

출 4:1-9,2013.06.30.늘찬양교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뽑으라면 모세를 첫 번째로 뽑을 것입니다. 그만큼 모세는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 탁월한 정치가로 용감한 전사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율법을 받은 자로 만세에 길이 빛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지기까지는 하나님의 전적인 간섭과 함께 하프타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프타임을 통한 네 번째 시간으로 실패와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세를 일으켜 세우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회복시킨 하나님의 모습에 대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 떨기나무의 부르심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너를 한 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너의 행동을 계속해서 보았고, 나는 너의 하는 말을 들었고, 네 모습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명령한다. 일어나 애굽으로 돌아가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라. 바로에게 가서 이렇게 외치라.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출 3:5-10) 하나님의 이 놀라운 부름에 대하여 모세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모세의 답변을 분석해봅시다.?…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며 반문하고 있는데, 이는 그 마음의 중심에 “나는 무능한 사람이요,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도망자요. 실패자요, 늙고 나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인데 왜 날 귀찮게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어눌한 답변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자신감을 상실한 무능한 사람,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못난 사람으로 바뀐 것일까요? 모세가 맨 처음부터 이렇게 힘없고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에서 태어난 모세는 가족들의 지략으로 말미암아 바로의 공주의 양아들로 궁궐에 들어가 40년 동안 애굽의 최고 학문과 지략과 문명을 배우면서 젊음과 박력이 넘치는 용사로 지도자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넘치는 열정과 패기로 인해 애굽인을 살인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망명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황급히 도망 온 미디안 광야에서 객이 되어 또 40년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 80세가 되었고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기나긴 하프타임의 40년 세월동안 모세는 자신감과 열정을 상실한 채 패배자의 의식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잔병치레에 효자 없다”고 모세는 오랜 도망자의 삶속에 즉 40년의 하프타임 세월동안 패배자, 무능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속에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패배자와 절망자로 살아가는 모세를 왜 부르신 것일까요? 그리고 가시떨기나무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막에 아무렇게나 버림받은 그 흔하디흔한 가시떨기나무, 이 보잘 것 없는 가시떨기나무, 이것이 바로 모세의 모습이었습니다. 모세는 한 때 오만과 잘못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자각해야 할 사실은 자기가 가시떨기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모세는 의기 충만하여 혈기가 넘쳐났습니다. 자기 뜻과 생각과 힘으로 그 무엇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가시떨기나무는 한 시간도 채 타지 못하고,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타버려서 재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경험한 떨기나무의 교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도 조상들로부터 축복의 땅을 약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애굽 땅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난과 심한 노동으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그 누구 하나 도와 줄 자 없는 그야말로 소망 없는 가련한 백성들, 그들이 바로 가시떨기나무였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 가시나무떨기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이 붙었으나 그 나무가 타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낙심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직은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벌써 타버렸을 존재들입니다. 가시떨기나무가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로 가시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가시떨기나무와 같은 모세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또 저와 여러분도 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아는 지혜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하프타임에서 일어나서 기적의 주인공으로 바뀌어 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한 때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 그는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 있는 모세에게 사랑의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삶을 붙잡을 때 너는 다시 할 수 있다. 잠깐 있다가 꺼지는 연기를 피우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토록 찬란한 빛을 발하며 거룩한 삶으로 네 삶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너는 보지 못하는가?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이제 너는 보게 될 것이다. 너의 생애에 이제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축복이 있게 될 것이다. 세상은 네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출 3:6-12)할렐루야!

Ⅱ.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 내가 누굽니까? 내가 누구기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까?" 질문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2절)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일까요? 지난 주 저는 여러분에게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는데 하나는 소유형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형 인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 유형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40세에 젊은 혈기를 앞세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가지고 행동하였다가 그만 실수를 저질렀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 속에는 인간의 지성과 힘을 가지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오만과 무모함을 가지고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그런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 유형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아!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하고 애쓰고, 무엇을 집어 봐도, 무엇을 획득 해봐도, 무엇을 소유 해봐도 결론은 허무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전능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2절)고 물으시는 이유는 “네가 이렇게 멸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그래도 여기까지 버티며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돌보심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아직도 세상의 안목으로 너를 보려고 하느냐? 하나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명 즉 목사로서, 성도로서 교회로서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명에 대한 일들을 생각을 하여 봅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의지나, 나의 생각을 총동원하여 나를 부르신 그분에게서 맡겨진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일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나 야심으로 그 분의 소명에 응답을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명은 믿음에서부터, 신령한 영적인 상태에서부터 출발을 하여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참으로 곤란합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바른 사명감, 소명이 확실치 않으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또다시 인간적인 부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는 너와 네 민족을 한 시대에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민족으로 교회로 부르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믿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이 원칙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의 그 소명에 충실 할 때에 사명은 그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려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습니까? 왜 여러분을 성도로 세우셨습니까? 하나님이 왜 늘찬양교회를 세우셨습니까? 할 일이 없어서… 하나님이 심심해서… 부르셨습니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 사명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나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영적 도구로 드릴 수 있는 믿음과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Ⅲ. 모세가 주저하는 이유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왜 그렇게 불안해하며 지체하고 있습니까?

첫째, 자신의 능력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나이도 많고 힘도 부족하다고 의지도 약하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을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금방 지쳐버리고 포기한 채 모든 것을 중단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585장 2절에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가진 자원, 능력들만을 생각함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모세는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과거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의분을 품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때 그를 주께서 도와주시지 않고 침묵하셨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역시 또 다시 일어서려하지 않는 이유가 과거의 고난과 역경 때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아니하시고 멀리하셨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어찌되었든 모세는 자신이 온 이스라엘 앞에 나섰다가 혹시 개망신 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전능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모세는 백성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설령 자신이 사명을 좇아 나간다고 할지라도 백성들이 자기를 믿고 따라주지 않을 것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당연한 염려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가장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결코 사명자는 어떤 이유로든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에 대하여 “지팡이니이다.”라고 대답하는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말씀에 의지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되어 물려고 합니다. 피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발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시 손을 넣었을 때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큰 사명을 맡기면서도 특별한 능력이나 표적을 그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큰일을 행하게 하실 때 특별한 권능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직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나타낼 표적을 보였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이 사건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큰일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통해 큰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주께서 부르실 때에 더 이상 지체하거나 머뭇거리지 말고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은사, 내가 가진 사명을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Ⅳ. 역사를 이루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내어 역사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으로 일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모세에게 남은 것은 지팡이뿐이었습니다. 지팡이는 양을 치는 유일한 기구요, 그의 생활 기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남아있는 작은 것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역사를 이루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실 때에도 “너희가 그 일을 하라 명령하시고” 이에 순종하여 한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주님의 손으로 축사하실 때에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자신을 돌아보며 패배감, 절망감,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의 상담 일화가 있습니다. 52세의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미국의 피일 박사를 만나 보라 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박사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습니다. 그는 앉자마자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희망도 없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고 완전히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당신의 귀중한 재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봅시다.”라고 하자 “그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적는다는 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은 계신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결혼 생활 30년에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 없이 나를 위로하고 살아온 아내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몇이나 되는지요?”, “예 셋인데 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정말 좋은 친구 몇이 있습니다.”, “건강은 어떤가요?”, “건강이 좋아서 누워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할 일 많은 나라라고 생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중에서 찾아낸 재산목록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l. 훌륭한 부인이 있다. 2. 사랑스런 아이들이 셋이 있다. 3. 의리 있는 친구가 있다. 4. 건강이 있다. 5. 미국에 할 일이 많다. 6. 신앙이 있다...피일 박사는 이 중년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사업과 여기에 기록된 재산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부끄러운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에게는 현재 상상할 수 없이 큰 보화가 남아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는 자신에 찬 발걸음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대성공자가 되어 감사의 소식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을 찾아 그것을 발견하는 자만이 현실에서 회복의 기적을 이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쇼펜 하우엘은 사람 들이 가진 것은 좀처럼 생각지 않고 늘 우리들에게 없는 것만을 생각 하는 것이 이 세계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지나가버린 과거만을 생각하고 없는 것만 생각하며 그것을 원망하고 탄식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는 모세의 중심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네 과거를 생각하지 말아라. 네 과거의 젊음의 박력과 학문적 소양, 그리고 네 가슴에 불타던 과거를 생각지 말고 현재 네 손에 있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작은 일이지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현재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 말일입니다. 모세는 40년 목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지팡이로 움직이는 일은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자의 공통점은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긍정의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우리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실 때 굉장한 능력을 주시면서 일을 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큰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이길 때에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냇가로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그의 목양 주머니에 넣고 그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를 가지고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골리앗이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하고 비웃고 저주하면서 “내가 네 시체를 새와 들짐승에게 주겠다.”고 외쳤습니다. 이때 다윗은 큰 소리로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고 외치고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그에게 던졌습니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고 그는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물맷돌로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재벌로 미국의 콜게이트(WiIIiam Colgate)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던 고향을 떠나려고 나룻배를 탔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가방을 들고 떠나는 모습이 뱃사공의 눈에는 어쩐지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그가 소년에게 “자네 어디를 가는가?” 하고 묻자 “뉴욕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엇하러 가나?”. “돈 벌러 갑니다.”, “무슨 기술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비누공장에서 얼마동안 일했습니다.”, “그러면 비누 만드는 일을 시작하기 바라네!” 뱃사공의 이 한 마디가 그 소년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는 뉴욕에 가서 비누공장에 들어가 거기서부터 열심히 일하였고 그리하여 크게 성공하여 세계적인 비누, 치약, 회사의 대재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할 때 현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연 됩니다. 저는 늘찬양교회에 무한한 자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한 프레이즈 실용음악학원을 통한 찬양전문사역의 길, 세계복음화의 사역, 찬양치유센터, 그리고 25년 넘게 이어온 찬양강해 등 을 통해 앞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하여 커다란 사역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바라보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진 자원들을 100%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내 손에 있는 것을 주께 드려야 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에게 있어 양치는 지팡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이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의 능력의 손에 들어가면 무한한 기적을 일으킵니다. 마더 테레사는 주의 부르심을 받아 수도원을 떠나면서 “주여, 나는 오늘밤 어디서 잘지 모르고 떠나나이다. 나는 내일 아침 어디서 먹을지 모르고 떠나나이다. 나는 이 한 벌의 옷이 해어지면 무슨 옷을 입을지 모르고 떠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카르타고에 들어가 불쌍한 거지, 고아, 문등병자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큰일을 시작했다고 주위에서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약한 테레사익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손을 주께 드렸으니 이 손으로 하는 일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큰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빌 l :6).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를 완전히 포기하는 자에게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무엇을 주시고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에 있는 것까지 다 포기하게 하시고 최후의 남은 것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후에 일하게 하십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큰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프타임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온 모든 실패와 절망과 낙심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내가 가진 작은 것,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잘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은사를 드리고, 눈물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생명을 드릴 때 우리의 후반전은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었듯이 놀랍게 변화하는 기적의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더욱 힘차고 기쁘고 즐겁게 될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모세가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 할 때는 젊을 때, 아직 힘 있을 때 애굽의 모든 학문과 무술을 다 익혔을 때, 준비되었을 때 쓰셨더라면 더욱 큰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시는 관점은 다릅니다. 혈기 방자한 그 모습으로는 안 되겠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어 자신을 꺾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광야 40년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하프타임의 시간이 꼭 필요했기에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속에 주어진 절망과 낙심과 좌절과 실패의 하프타임이 결코 헛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적 하프타임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오늘도 모 교회 목사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상담하셨습니다. 저보다 13년 연배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은 흡족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는 제가 먼저 하프타임의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하프타임을 멋지게 극복하고 회복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세워주고 치료하는 믿음의 주인공들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공부>

1. ‘내 백성을 인도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모세는 왜 “내가 누구관대..”라는 반

문을 한 것입니까? 여기에 담긴 의미는?

▶ ① 40년의 하프타임(도망자생활)동안 모세는 자신감을 상실한 무능한 사람,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못난 사람 으로 바뀌어 있었다.

② “나는 무능한 사람이요,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도망자요. 실패자요, 늙고 나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

약한 사람인데 왜 날 귀찮게 하느냐?”는 반문이다.

③ 보잘것없는 가시떨기나무가 상징하는 의미 역시, 보잘것없이 약해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

다.

2.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다는 말씀 속에 숨어있는 영적교훈은?

▶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낙심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직은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씀

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입니다.

3. “내가 누구관대..”라는 반문에 하나님은 어떤 질문을 모세에게 던졌습니까? 여기에 담긴

영적의미는?

▶ ① 네가 이렇게 멸망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② 너는 아직도 세상의 안목으로 너 자신을 바라보느냐? 하나님 안에서 너를 일꾼으로 부르신 목적이 분명히

있다. 네 믿음의 정체성을 찾으라.

③ 나를 부르신 주님의 그 소명에 충실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능력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4.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주저하는 이유 3가지는 무엇인가?

▶ ① 자신의 능력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생각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종하지 않고 배반할 백성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을 쫓아 귀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①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은사, 능력, 좋아하는 것 등)을 찾아야 한다.

② 작지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행하여야한다.

③ 내 손에 있는 것(나 자신)을 주께 드려야 한다,

6. 하프타임의 네 번째 시간이 주는 최고의 은혜와 영적교훈은 무엇입니까?

▶ 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자존심, 능력, 지혜, 방법 등)를 완전히 포기

한 자를 들어쓰셔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환경을 다 열어놓으신 후에 우리에게 할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에 있는 것까지 다 포기하게 하시고 최후의 남은 것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후에 일

하게 하십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큰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프타임의

은혜이며 능력입니다.

②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의 세월이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후반전(미래)을 향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③ 가시떨기나무에 붙은 불처럼 하프타임의 은혜와 능력을 깨닫고 믿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때를 기다리는 한

여러분의 미래와 앞날은 더욱 멋지고 아름답고 귀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