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의 기적♥
왕하 4:1-7,2015,02,15. 늘찬양교회
과거 제 아내가 물놀이 사고로 인하여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손수 빨래와 청소를 하고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면서 가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별히 식사를 준비하면서 그릇의 여러 종류와 그 사용 용도에 대해서 정확히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생선을 담을 때는 밥그릇이나 국 대접에 담아서는 안 되고 얇고 넓은 대접을 써야 생선의 가시를 쉽게 발라먹을 수 있다는 것과 찌개를 끓일 때도 그 찌개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냄비의 크기와 불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 등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릇을 보관하는 곳 역시 아무데나 놓는 것이 아니고 정한 위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이번 식사를 준비하며 밥그릇을 닦으면서 확실하게 잘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밥그릇과 국그릇의 이가 여러 군데 나가서 보기가 흉한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시장에 나가 새것으로 바꾸어 아내와 가족들을 대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침 아내가 신혼 때 마련해온 밥그릇과 국그릇의 모양과 색깔이 똑같은 것이 있어서 얼마나 반갑던지 새것을 사 가지고 오면서 잠시나나 신혼의 기쁨을 맛볼 수가 있었답니다. 할렐루야! 제가 서두부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집안 자랑을 하며 그릇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 설교의 제목이 ‘빈 그릇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남편은 죽고 남은 두 아들은 빚쟁이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 한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때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2절)고 말했습니다. 이때 여인은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여인을 향하여 엘리사는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리라 그리고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빌린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3-4절) 명령할 때에 이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니 빈 그릇에 가득 기름이 채워졌고 그 채워진 기름을 팔아 어려움을 해결한 기적적인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는 ‘빈 그릇의 기적’을 통하여 도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 때라도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하지 말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부르짖음을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도 선지자의 아내가 받았던 기적과 축복을 우리도 그 이상으로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에 대하여 깊이 있게 살펴보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Ⅰ. 엘리사를 찾아온 불행한 여인
여호사밧 왕이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리고,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지자 엘리사에게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인 한 여인이 와서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1절) 고 고백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이 그냥 죽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텐데, 빚을 많이 남겨 놓고 신학생이었던 남편이 죽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제 두 아들마저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율법에 따라 빚쟁이에게 끌려가 7년 간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어떤 여인은 그것참 잘됐다! 내가 그렇게도 신학을 하지 말라고 얼마나 극구 말렸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진학하더니만 빚만 잔뜩 지고 신학도 마치지 못한 채 죽었으니 이제 누구를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과연 믿는 사람들에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교회들이 신학생들을 그렇게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므로 하나님의 생도들이 그렇게 빚만 지고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느냐?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외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원망함 속에 하나님을 저주하고 목사를 욕하고 교회를 비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그 엄청난 불행 때문에 죽은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불평이나 원망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거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는커녕,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 여인은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만큼 그 만큼 더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생도의 아내였던 여인은 당대의 참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알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 엘리사를 찾았다는 것은 엘리사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이 아니고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해답이 있다고 믿고 그 문제를 가지고 선지자 엘리사 앞에 나온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秘密)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사 41:17)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모든 자들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생도의 아내는 문제를 숨김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도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의 상황을 맞아서 물질의 환란과 고난의 풍파가 몰려왔다 할지라도 삶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환경을 비관하거나 처지를 원망하여 자살하거나 자포자기해서도 안 됩니다.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게 되는 최상의 기회라고 외치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절대 신상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도 절대적인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를 바라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을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는 때가 되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압니다. 더욱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가는 신앙의 길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대책도 없이 애틋함 속에 부르짖는 그녀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엘리사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친 말이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의문점입니까? 남편은 죽었고, 남은 두 아이는 빚값으로 대신 종으로 끌려가게 된 현실 속에서 여인에게 현재 너희 집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아닙니까? 아마 저 같으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아니 선생님!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지금 저희 집에 무엇이 남아 있다면 여기까지 찾아오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런 저희들에게 무엇이 있느냐? 고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며 볼멘소리로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은혜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응답의 축복이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이 같은 질문을 통하여 이런 삶 속에서도 네 속에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느냐? 하는 것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느냐? 는 믿음을 테스트 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루터기의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를 보고자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의 스승 엘리야가 왜 로뎀나무 아래서 무너진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혼자 남았다는 생각, 아무도 나와 뜻을 같이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낙심하여 죽여 달라고 외친 것입니다.
『 미국의 어느 목사님의 사무실에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제 모든 것은 끝나 버렸습니다. 저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는데… 다 틀렸습니다. 제 나이 52살입니다." 듣고 있던 목사님이 되물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까?" 중년 신사는 맥없이 "예,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같이 얘기해 보자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내가 있습니까?" "예, 훌륭한 부인이 있습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귀여운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정겨운 친구들이 곁에 있습니다." "순결합니까?" "나름대로 깨끗하게 살아왔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미국은 기회의 왕국이라고 생각됩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건강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대답을 하던 그 중년 신사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잘 알겠습니다." 하고는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뒷날, 그 중년 신사는 성공한 훌륭한 신사의 모습을 하고 그 목사님을 찾아와 고마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
여러분의 가정에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불행한 문제가 있습니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교회나 가정, 더 나아가 직장과 나라 등에 어떤 불행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 를 생각해 내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대개는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며 탄식하기에 바쁩니다. 아니면, 무엇 또는 누구를 의지할까? 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지혜롭게도 집에 남아있는 기름 한 병을 기억해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 병 기름이 남아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2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 사람의 불행은 내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내 슬픔은 가장 비참한 것이고, 내 불행은 최악의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지 하나님이 주는 생각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어떤 절망과 낙심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Ⅱ. 빈 그릇을 빌려오라.
남편은 죽고 남은 두 아들은 빚쟁이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여인에게, 한 병의 기름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많은 빚을 해결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한 병의 기름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더 큰 슬픔과 눈물만이 흐를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지자 엘리사는 바로 그 현실을 직시하며 붙들라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사서 그 것을 붙들고 하나님께 매여 달려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미 잃어버린 것이나 앞으로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남은 것이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새롭게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작지만 아주 작은 내 믿음 내 실물을 붙잡고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는 질문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늘찬양교회 속에 프레이즈 실용음악학원의 모습 속에 부흥의 모습이 중단되고 사업이 어려워져 힘들어 황폐해가고 있다할지라도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쉬움 속에 원망만 하고 있지 말고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과 원생들과 선생님들이 마음을 합쳐서 부흥의 기적을 창출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소년이 자신의 점심으로 싸온 작은 도시락을 주님 앞에 내어 놓았을 때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떡 광주리가 열 두 광주리가 되었듯이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소망의 비전을 드리며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만드는 믿음의 주인공들로 다시금 세워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사는 다 잃어버리고 망했다는 여인의 집에 있는 한 병 기름을 붙잡았습니다. 그 한 병의 기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의 그루터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명령하기를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려오라, 그리고 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3절)고 지시 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지시요,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그러나 여인은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집에 가서 그릇을 빌려왔습니다. 최면 불구하고 아주 큰 그릇으로 많이 빌려왔습니다.
Ⅲ. 방문을 닫으라.
믿음을 따라 이웃에게 빌려 온 그릇이 방안에 가득하였습니다. 이제 여인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아들과 함께 그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따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왜 문을 닫고 준비한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기적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 되어야지 자기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문을 닫으면 밖으로부터 단절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밖에는 많은 동네 사람들이 따라와서 여인과 아들에게 “무슨 일로 이렇게 많은 그릇을 빌려왔느냐?”고 묻고 있을 줄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 남은 기름을 이 빌려온 빈 그릇에 쏟으려고 합니다.”할 때에 저들이 비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요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문을 닫으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곤고하고 힘들어도 철저하게 믿음의 법칙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더욱 멋지게 거듭나야 합니다. 고난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는 비가 내려서 온 땅을 덮을 것이니 방주에 들어가서 목숨을 건지라는 명령을 받고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롱과 비난과 놀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40주 40야를 하늘에서 비를 쏟아 부을 때에 모든 가축과 노아의 8식구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물 심판을 믿지 않고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방주를 준비하므로 노아의 가정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던 날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순종하여 그물을 던질 때 그물이 찢어지기까지 고기를 가득 잡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삶이 우리를 속이고 당황하게 만든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판단과 말에 치우치거나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고 순종하여 나가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여인과 두 아들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의지하여 빌려 온 빈 그릇에 기름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은 어머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빈 그릇을 내어 밀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빈 그릇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빈 그릇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포기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버리고 비워진 만큼, 포기되고 죽어진 그 만큼 하나님은 하늘의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Ⅳ. 빈 그릇에 가득 채워진 기름
여인과 두 아들이 문을 닫아놓고 신나게 기름을 붓다 보니 어느새 빌려온 그릇이 동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에게 빈 그릇을 더 내놓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아들이 대답합니다. “어머니 이제 빈 그릇이 없습니다. 빌려온 그릇이 모두 다 기름으로 가득 찼습니다.”(6절)고 대답하는 그 순간 꽐꽐 쏟아지던 기름이 그만 딱 그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빌려온 그릇이 다 채워지도록 부어주시는 다함이 없는 축복의 역사였습니다. 그릇이 다하자 기름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기름이 다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의 분량만큼 기름의 복이 채워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릇을 준비한 만큼의 축복이 채워진 것입니다.
아마 여인과 두 아들은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가득 채워짐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이 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려온 그릇이 다하여 더 이상 채울 수가 없었을 때 이들은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요? 많은 후회와 기쁨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빈 그릇을 더 많이 빌릴 것을 ........ 하며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은혜의 비밀은 우리가 꿈을 가지되 처음부터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꿈을 가진 사람이 크게 됩니다. 아울러 그 꿈이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 아무리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여 넘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꿈의 사람 요셉을 잘 압니다. 그가 큰 꿈을 꾸었지만 그 꿈과는 정반대로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 보디발의 종이 되었고 그곳에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조차 술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었지만 쉽게 감옥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꿈을 버리지 않고 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결국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가족을 구원하며 애굽 땅을 다스리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대하여 정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찬송가 545(344)장에서는 1절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2절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 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3절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후렴)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또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10:10)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같은 풍성함의 축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Ⅴ. 결 론
성도란 세상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누리는 것으로 행복과 불행을 결정 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지고 배운 자들도 고민하며 아파하며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저 영광의 나라를 기억하며 믿음 안에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기뻐하며 평안함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주인공들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 사는 세상에 메여서 영원한 기쁨을 놓치지 마십시오. . 환경을 바라보며 믿음의 팔을 늘어뜨리지 마십시오. 기죽지 마십시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범사에 늘찬양하며 달려가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의 나라가 여러분 마음에 임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없는 것이나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 그것을 붙잡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현재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믿음만 잃어버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온 세상을 이깁니다.
우리함께 찬송가 357장(397) “주 믿는 사람 일어나”를 부르며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1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2 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 빠지니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 드리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참 믿고 의지하면서 겁 없이 나갈 때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3 끝까지 이긴 사람은 흰옷을 입히고 (후렴)
또 영생 복을 주시니 참 기쁜 일일세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이 어둔 세상 지나서 저 천성 가도록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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