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에벤에셀의 하나님(07월 26일 주일 낮설교)

늘찬양 2020. 7. 25. 12:44

매월 4주에는 치유설교(55)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 제목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입니다.

요약본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3-12,2020.07.26.늘찬양교회

 

 

잃어버린 20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일본경제에 관련해서 나온 말인데, 1991년부터 일본의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이후 정부의 여러 정책에도 불구하고 2001년까지 경제성장률이 평균 1.1%에 그치는 유례없는 장기 침체가 지속되었던 잃어버린 10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 경제의 반등이 기대되었으나 침체가 계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 은행 부실 누적 대출 기피 기업 · 가계부도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실물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다보니 GDP에서 중국에게 세계 2위 자리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년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경제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시나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런 성과나 보람이 없거나 발전이 없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면 그것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코로나 19를 맞이하여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뉴노멀시대, 언택크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더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기럇여아림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국경에 있는 변방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법궤가 20년 동안이나 변방 기럇여야림에 머물러있었습니다.

 

법궤를 빼앗아간 블레셋은 7개월 동안 보관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블레셋의 왕과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에, 블레셋은 그 법궤를 위험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국경마을인 기럇여아림으로 보냈고, 이스라엘은 그 법궤를 다시 실로로 옮겨오지 않고 그대로 20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나라가 있기는 있으나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는 신세가 되어 살아야 했고, 백성들이 열심히 살았어도 고달프기만 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세월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20년이었습니다.

 

지금 코로나 19’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교회 예배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인터넷 예배와 동영상, 텔레비전, 유투브 등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 나라에 빼앗기고 하나님의 임재를 잊은 채 번뇌와 방황 속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담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4:24)가 아닌 것일 수가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부흥의 전성시대를 맞이했었습니다. 편의점과 카페의 숫자보다 교회 십자가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 부흥의 시대 때 마치 교회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 교회의 일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더 기쁘시게 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내 교회를 더 많이 알리고 더 빨리 부흥시키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내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곳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교회건축에 열을 올렸으며, 교회 내부도 더 아름답게 치장시켰으며, 고가의 음향시설에 웅장한 성가대와 찬양단들이 세워졌습니다. 교회 예배는 하나의 축제장이었습니다. 마음껏 찬양하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교제하는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덕택에 값진 자가용을 타고 다닐 수 있었고, 교회 장로와 권사 직분은 대단한 권세라도 되는 것처럼 그 위용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름뿐인 크리스천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곳곳에서 지탄받는 크리스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일이었습니다. 마치 이것은 실로와 기럇여야림에 있는 법궤의 차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20년 동안 기럇여야림에 머물러 있어도 하등에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이름을 앞세워 선교를 하고 이웃을 돕는 등 하나님의 본질과는 먼 거리가 있어도 어떻든 교회는 성장할 수 있다 보니 그렇게 큰 문제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당장 교회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자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길거리에 수많은 가게들이 폐업을 하듯 교회도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하늘을 찌르게 된 것입니다.

 

 

본문 2절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변방에 모셔두고 우리들만 모여서 띵까띵까 한 것이 아닌가? 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외시킨 신자의 삶에는 기쁨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생활에는 평안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역시 하나님을 소외시키고 외적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그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코로나를 통하여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고 있느냐?”, “너희가 교회 안에서만 신자가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믿음의 삶을 살아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도 차이가 없는데... 어떻게 너희를 살아있다 할 수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절대 교회부흥의 시대를 맞이하여 지내오는 20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보다 교회의 일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요란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이 흘러 들어가면 싹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교회들은 자기 교회의 일들을 자랑하기에 급급한지...

 

. 에벤에셀의 회복

 

본문 3절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선언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께로만 향하고 주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코로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내 영적 스승의 한분이셨던 엄두섭 목사님이 은성수도원에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너희가 살려면 예수의 얼, 예수의 피, 예수의 마음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공해로 코가 매운 도시의 거리, 사이비 종교로 미친 심성들, 부모 자식 간의 싸움으로 장안을 덮은 피비린내, 신을 채색하려는 인간들의 신신학, 우리는 이제 질식하여 죽을 지경에 있다. 정녕 썩은 냄새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예수 향기를 뿜는 자 어디 없을까? 그 향기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그 향기를 뿜는 자는 누구인가? 신실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예수의 얼을 닮은 자가 또 하나의 예수이다. 또 하나의 예수가 되어 그 향기를 이 세상에 날리자. 예수의 마음을 닮은 자의 신령과 진정이 바로 영성이다. 영성생활의 향기는 바로 예수의 향기이다. 우리 기독교인 하나하나가 예수라 불리는 향수이다. 그 향기를 온 천하에 미치도록 하자.” 엄 목사님과 함께 수도원 생활을 할 때는 젊었을 때라 이 말씀이 잘 피부로 와 닫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들이 자꾸 딴 곳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툭하면 해외선교를 빙자하여 지방회 돈을 축내어 해외여행을 가지 않나...은퇴식을 갖지 않으면 은퇴비를 주지 않는다는 회칙을 만들어 힘없는 목회자의 돈을 횡령하지를 않나...위력으로 성폭력을 행사하지 않나...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우리 속에서 자행되어 왔습니다.

 

코로나 19는 자연 많이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많은 자정능력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자질 없는 목사나 허울뿐인 교회들이 정리되면서 하나님의 본질을 찾아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께로 회개하며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봅니다. 물론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의 크기나 성도의 수는 무의미 합니다. 과거 부흥하던 시대로서의 교회를 갈망해서는 안 됩니다. 단언하건데...수적 부흥의 시대, 외형적인 성장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여기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춤하며 자기와 교회를 개혁하지 않는 자들은 다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4절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그들은 그동안 섬기던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모든 우상의 잔재들을 찾아내어 다 파괴하고 버렸습니다. 우상을 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이 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은 두렵고 당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무방비상태였고 블레셋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일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침착했습니다. 그리고 젖 먹는 어린 양을 가져오게 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제물의 전부를 모두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입니다.(6:22-23) 이것은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드려 헌신하겠다는 다짐의 제사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모두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헌신입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생명을 맡겨 드렸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냐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이방의 종교처럼 가끔씩 찾아가서 문안하고 주고받는 거래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과 몸과 환경과 시간을 주신 주인이신데, 당신이 만드신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상상치 못한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부자관계란 거래가 필요할 때만 가끔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함께 하는 관계입니다. 나의 주인이시고 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사랑하며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의 말씀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만 온전히 정립되면, 그 후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코로나의 위기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가 피할 길을 여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94:22, 8:28)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사무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레를 발하시어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즉 하나님께서는 천둥을 보내시어 그들을 물리치는 무기로 쓰신 것입니다. 3절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섬기자, 여호와께서는 응답하시고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블레셋을 이긴 후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12)는 의미로 이 돌을 세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에 블레셋에게 패한 곳이 바로 에벤에셀이었습니다.(41-2) 이번 승리는 이전에 패한 곳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완벽한 역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하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역전시키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금식하며 회개하고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교회는 엄청난 위기와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역전의 용사로 믿음의 향기로 예수의 얼로 다시 살아 역사할 수 있도록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 영광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한국교회와 저와 여러분 속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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