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휴식의 치유

늘찬양 2020. 8. 22. 11:13

매월 4째 주에는 치유설교(56번째)를 합니다.

설교전문은 검색 ‘늘찬양하는 삶’을 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비대면 시대에 기운 잃지 마세요!

 

 

휴식의 치유

막 6:30-31,2020.08.23.늘찬양교회

 

 

지금은 글로벌 세계화 시대,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여 온 세계와 경쟁하면서 살아야하며, AI 인공로봇과 디지털문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를 맞이하면서 인간은 더 각박하게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뉴-노멀 시대의 특징은 그 어느 누구도 삶을 코칭 해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자기에게 맞는 일의 영역을 찾고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갖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100세 까지 이어지는 내 인생의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Ⅰ. 4가지 일

 

100세 인생에서 우리가 지치지 않고 낙오자가 되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4가지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과 수면과 놀이와 휴식입니다.

먼저, 일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소중한 은사를 각자의 삶 속에서 잘 발휘하라고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고 했습니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일에서 찾습니다. 직장에서 퇴직을 하게 되면 물질에 대한 염려도 있지만 더 큰 걱정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하며 산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노동을 주셨습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고 일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사람에게 수면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낮을 만드셔서 일하게 하셨고 밤을 만드셔서 휴식하게 하셨습니다. 일하는 것도 복이지만 깊이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도 복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오락입니다. 취미생활입니다. 취미생활은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일만 하거나 잠만 자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취미생활을 통해서 세상의 다양한 부분들을 접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그래서 오락의 생활, 취미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은 쉼입니다. 우리의 삶을 더 능률 있게, 더 짜임새 있게, 더 활력 있게 하기 위해서 쉼이 필요합니다. 악보를 보면 꼭 쉼표가 있습니다. 만약 악보에 쉼표가 없다면 노래 부르다가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쉼표의 기능은 적당한 곳에서 쉬었다가 부르라는 것입니다. 쉼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절도 있게, 건강하게, 내용 있게 만드는 것이 쉼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마9:35) 부지런히 일하십니다. 사역하시고,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달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께 배운 대로 전합니다. 가르칩니다. 고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격려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분주한지 사람이 너무 많아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막 6:31). 쉴 겨를, 먹을 겨를도 없는 분주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라”는 것입니다. 휴식을 취하라, 쉼을 가져라, 안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Ⅱ. 휴식(쉼)의 은혜

 

1. 쉼은 재창조의 시간입니다.

옛날, 두 하인이 도끼로 장작을 패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감 집 하인은 육덕이 황소만한 장사였고, 이 대감 집 하인은 몸은 외소 하지만 꾀가 있는 하인이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장작을 패느냐?" 시합을 시켰습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김 대감집 하인과는 달리 이 대감집 하인은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장작을 팼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 대감 하인이 요령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일을 끝나고 보니까 김대감 하인보다 이 대감집 하인이 더 많은 장작을 팬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보게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네! 사실은 제가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니고 잠시 쉴 때마다 도끼의 날을 갈면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날선 도끼로 쉽게 장작을 팰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휴식이란? 도끼의 날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나만의 한적한 시간 속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명상의 시간을 갖으며, 말씀에 대한 깊은 감동과 확신을 갖는 것은 영적으로 재무장하는 것이요, 무시무시한 영적인 무기를 다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무장이 있을 때에만 험난한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쉼과 일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쉼과 일은 균형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쉼도 일도 한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균형이 깨집니다. 휴가도 너무 오래가면 안 됩니다. 한 열흘정도 실컷 놀다가 일하려면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쉼과 일의 리듬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노는 데도 얼마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밤과 낮을 만드셨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를 보면 사람이 일할 때는 소모된 체력과 에너지가 스스로 재생산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 때는 에너지가 소모만 되고 재생산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노는 사람은 더 빨리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권투선수는 경기할 때 3분 싸우고 1분 쉽니다. 만약 1분 싸우고 3분 쉰다면 권투생활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리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따라서 로뎀나무 아래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지치고 탈진해서 로뎀나무 아래로 찾아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를 통해 힘과 소망을 얻어서 호렙산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쉼과 일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쉼을 통해 미래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아무리 빨리 나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종종 스탠딩 훈련을 합니다. 뭔가 일이 꼬이고 안 되면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언제 인간의 문명이 발달되었는가? 어떤 학자들은 이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비 오는 날 동굴 속에서 발전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원시인들, 비가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할 수 없죠. 동굴 속에서 빗방울 바라보면서 멍청하게 있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이 있습니까? 라디오가 있습니까? 핸드폰이 있겠습니까? 멍청하게 비만 바라보고 있다가?? 그렇지 좋은 수가 생각났다?? 그렇게 한 가지씩 생각나는 것을 만들고 실천하다보니까 여러 기구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발전하여 문명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 휴가기간에 있다면 더 엎드려 주님께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물어보십시오...그리고 지혜와 건강과 능력을 구하십시오...코로나는 기회이자 재도약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나를 창출하기 위한 휴식과 쉼의 여정을 시작해 보십시오...

 

 

Ⅲ. 휴식의 치유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라

올해도 8월 첫 주간이 회사의 휴가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와 장마로 인해 마음대로 어디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6-7일 춘천에 있는 ‘변화산기도원’으로 피정일정을 잡았습니다. 피정은 말 그대로 ‘더위를 피해서, 힘든 일과를 피해서 쉬는 것입니다.’ 다행히 변화산 기도원은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지 않는 특별한 집회일정도 없는 조용한 기도원으로 피정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장소입니다.

 

다행히 제가 정한 일정동안에는 비도 멈추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 앞에 흘러내리는 엄청난 물의 양을 보며 다윗이 시 143편 8절과 6절에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며 손을 뻗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듯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친 몸과 영혼을 보면서 주를 향하여 손을 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아침마다 손을 들고 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 영혼을 주께로 들어 올리는 표현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우리는 제물을 들어 올립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제사요,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과 앞날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로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며 주 앞에 나갔습니다. 꽐꽐 흘러내리는 개천의 물을 보면서 내 모든 염려와 수고와 근심과 스트레스가 다 씻겨 내려가듯 없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참된 평안과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2. 휴식을 통해 치유와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 8-10절을 보면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은 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쉴 때는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도, 일꾼도, 심지어 종들도, 그리고 가축까지 다 쉬라고 했습니다. 완전한 안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안식하는 날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쉼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적당한 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도 먼저 쉬시고 일하셨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5). 예수님도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생체리듬 상 엿새 일하고 하루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의 섭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프랑스혁명 때 무신론자들이 주일예배를 막기 위해서 일주일을 7일에서 10일로 늘렸습니다. 그랬더니 산업의 생산량이 40%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혁명 때는 레닌이 일주일을 8일로 늘려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생산량이 30%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6일로 조정했더니 마찬가지로 30%가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7일로 환원시켰다고 합니다. 7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입니다. 인간은 6일 일하고 하루 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일하고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하여서입니다. 더 많은 이익은 바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더 잘 먹고 더 좋은 집을 사고 더 멀리 여행을 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쉬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기 때문이 아니라, 밑 빠진 독과 같은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은 죄 입니다. 이 죄 때문에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번영과 이익을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다스리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참된 안식은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휴식을 통해서 한 박자 쉬면서 내가 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지, 일을 해서 얻은 수입과 이익은 어디에 쓸 것인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일을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면서 방향을 다시 수정하는 그런 휴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을 통해 치유와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