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죽음의 승부수

늘찬양 2020. 8. 29. 18:35

매월 5주는 승부수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승부수입니다.

요약본입니다.

 

죽음의 승부수

4:15-16,2020.08.30.늘찬양교회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교회와 회사 자영업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직장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과, 은퇴 후 마땅한 직업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50대 중반의 가장들, 그리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미래 모습이 어떻게 될지 무척 걱정이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 나는 에스더가 던진 죽음의 승부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 왕후 에스더

 

이스라엘이 바사(지금의 이란) 나라에 '아하수에로'라는 대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에디오피아까지 127주를 통치하였으며 200만 군대를 장악한 대왕이었습니다. 그는 왕후 와스디가 술자리에 초청된 것을 거부하자 왕명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왕후였던 '와스디'를 축출하였습니다. 그리곤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려고 전국에 명령하여 새 왕비를 간택했는데 그때 '모르드개'의 수양딸이던 '에스더'가 하나님의 섭리로 노예의 신분에서 일약 왕후가 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바사 나라에는 총리대신 '하만'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자 이었습니다만, 그런데 대궐 문지기인 '모르드개'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절하지 않는다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만''모르드개'를 미워하게 되었고, 이 미움은 '모르드개'가 유대 후손임을 알고 난 후 유대 민족에 대한 대 학살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총리대신 '하만'은 왕에게 뇌물을 주고 왕으로부터 유대인을 학살해도 좋다는 친서를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하만'1213일 하루 동안 유대인 남녀노소를 다 죽이고 그 재물까지 빼앗으라는 명령을 전국에 선포합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모두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위기를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앞장을 섰고 모든 백성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 소식이 왕궁에 있던 왕후 에스더에게 전해졌습니다. 에스더가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자기를 키워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하만의 간계를 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출해달라고 탄원을 하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 역전승의 비결

 

첫째,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에스더의 일사각오의 헌신으로 나타난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세가 뒤바뀌었습니다. 역전승이 일어난 것입니다. 역전승의 핵심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죽기로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더 210절에 보면 에스더가 왕후가 될 때까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겼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전에 알려졌다면 왕후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왕후로 선택된 후에도 에스더에게 신분과 행동에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을 것입니다. 어떻든 에스더는 유대인임을 숨기면서 출세의 가도를 달려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결코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나섰다가 자기도 동족들과 함께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자기가 쌓아놓은 그 모든 성공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을 위해 생명을 내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왕후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왕후의 기득권이 어떤 것입니까? 그야말로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득권보다 유대 백성들의 생명이 더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부와 명예, 이기심을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정말 이러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마음입니다.

 

에스더가 죽기로 각오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동족들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아무도 자신이 유다인 포로출신이라는 걸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족들이 모두 죽고 난 후에 누리는 자신의 편안함과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둘째,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사촌오빠 모르드개로부터 매우 중요한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14절에 있는 것처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너를 왕후가 되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너를 쓰시기 위해서이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너를 통해서 행하시기 위해 너를 왕후 자리에 앉히신 것이다. 이제 네가 나서야 한다. 이것이 너의 사명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에스더는 왜 내가 왕후가 되었는가를 생각지 않고 살았습니다. 자기의 복으로 알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촌 오빠의 이 말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 유대인이면서, 포로인 내가 어찌 왕후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왕후가 된 것은 그저 나만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질 않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왕후가 되게 하신 숨겨진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사명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교회의 본래 사명을 잊은 채 꽃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교회라는 아방궁에서 너무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목회자가 신이었고 목회자의 말이 권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도 나왔고 전광훈목사도 나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비대면 예배라는 선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과의 1:1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고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관심보다는 교회의 외적성장과 부흥에 하나의 일꾼으로만 보고 내 교회성장에만 힘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통해 복음이 세상에 활짝 펼쳐지듯이 세상에 나가 삶으로 복음을 전하며 삶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라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님은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살리는 죽음의 비밀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보았습니다. 그는 정치인도 아닌 평범한 30대 가장으로서 조선 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간언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핵심은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며 시무 7조를 고한다며 고쳐야 할 7가지를 밝혔습니다. 저 개인은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며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이글을 썼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에스더 이야기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듯 조은산의 글이 목회자인 저를 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정부와 권력에 기웃기웃하는 목사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이기적인 모습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자신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손해를 요구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처세술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고 봐야 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속내가 아닙니까?

 

나라가 내 것이 아니듯’, ‘왕후의 자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나 자신을 겸손히 내 어 놓는 순간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살리는 죽음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검찰의 최근 인사이동, 부동산정책, 의협과의 갈등, 비대면 예배 공포, 코로나 2.5 발표 등 정부가 행하는 요즈음 형태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기보다는 힘으로 권력으로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판국입니다. 절대로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주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나누어 주면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삽니다.

그러나 움켜쥐면 다른 사람들은 배고파 죽고 나는 배불러 죽습니다.

내려놓으면 생명의 역사로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 기도의 힘

 

우리는 에스더를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자신에게 있는 명예, 권력, 노하우등 자기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먼저 베푸는 것이 살리는 죽음의 비밀임을 알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을 알았다면 귀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제가 승부수 설교에서 늘 주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의 승부수입니다. 다시 말해 에스더의 승부수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에스더는 외삼촌 모르드개의 부탁과 권면을 받고서 고민하다가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전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이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며 중보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기도 한 이후에 왕 앞에 나가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아가는 삶의 앞길에 좀처럼 경제가 나아질 방향이 안보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코로나 위기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폭망한 직업과 직장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고 제 2차 감염위기로 인해 정부가 비대면 예배를 선포하였으며 앞으로 2주 후에도 나아질 조짐이 안 보이면 3차 위기를 선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힘들어 보이고 안 좋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더가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승부수를 던졌듯이 우리는 코로나 위기에 교회와 가정을 살리기 위해 복음의 확장을 위해 기도의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능력을 받습니다. 심지어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를 가지고 삶을 극복하게 합니다. 코로나를 이기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가 여러분을 능력자로 바꿔 놓을 것입니다. 특별히 에스더처럼 죽음을 무릎 쓰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어달려 보십시오... 주님의 치유하심과 회복하심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