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동역을 통한 변화(5) 베드로와 고넬료의 동역

늘찬양 2006. 11. 29. 16:28
 

동역을 통한 변화(5) 베드로와 고넬료의 동역

                     행 10: 1-8, 44-48. 2006.11.05. 늘찬양교회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만남은 참으로 소중하고도 귀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이 그런 소중하고 귀하고 행복한 만남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와 백부장 고넬료와의 만남의 사건으로 사도행전 10장 전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만남에 있어서 극복되어야 할 오해나 편견 그리고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 더 나아가 복음은 󰡐기쁜 소식󰡑 즉, 죽어 가는 인간을 살리는 생명의 복음이 이스라엘백성들을 넘어서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셨는데 그 전환점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순종과 동역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Ⅰ.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뜻이 유대인들과 예루살렘만을 향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뜻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행1:8) 복음이 증거 되기를 원하시는데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다음 이방의 땅에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지금 이방의 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을 보내신 목적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120여명의 제자들이 성령 침례를 받아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획기적인 사건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 마가 요한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하나의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이 아닌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방에 교회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가리켜 󰡐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주님의 교회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그리고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로마로 확장해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에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 󰡐제2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날 것을 베드로도 생각하지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처음에는 가이사랴에 가는 것조차 싫어했고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던 항구 도시로 유대인들의 원수인 로마 군인들의 주둔군의 본부가 그곳에 있었고 또 이방인들의 거주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처음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가라는 환상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하면서 거부했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행10:14). 옛날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할 때 했던 말과 비슷한 거부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에 이끌려 억지로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기도했을 때 바로 그곳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님이 똑 같은 방식으로 임하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방의 땅에, 어떻게 로마 군인들이 득실거리는 이방의 땅에, 이런 엄청난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베드로는 그 놀라움을 사도행전 10장 45절에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47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하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이 같은 󰡐제2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이방 사람이며 로마 군인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성령님께서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하여 일하시는 동역의 현장, 역사적인 현장을 다 함께 방문하겠습니다.


 

                Ⅱ. 고넬료는 누구인가?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마리아와 팔레스틴 전지역으로 확산되던 시기인 A.D.37-46년경의 인물로서 당시 로마 황제는 칼리쿨라(Caligula, A.D.37-41년)였으며 유대 총독은 마룰루스(Marullus, A.D.38-41)였습니다. 고넬료는 바로 이 마룰루스 수하의 이달리아 군대 백부장으로서 당시 로마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의 수비를 책임 맡았던 것으로 추측되어 집니다. 또한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이제 사도 바울에 의한 전도 사역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문 2절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2절)이었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존경”과 더불어 “두려움”이 함께 포함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고넬료는 하나님을 존경함과 아울러 두려운 분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자비, 용서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놓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을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말도 행동도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을 때가 문제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그때 보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없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건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존경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24~2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존경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정복군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신분상 엎드려 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존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존경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이유만으로 존경했습니다. 이는 베드로를 존경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보내신 하나님을 존경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순종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지시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존중했기에 하나님의 말씀도 존중했습니다. 고넬료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들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저들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크게 임했습니다. 이러한 고넬료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 깊은 영성의 사람

     또한 고넬료는 기도하는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상을 볼 정도로 깊은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는 고넬료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3절 이하에서는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본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루는 제 9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고넬료가 깊은 기도의 사람, 영성의 사람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기도했습니다. 제9시쯤이라고 하면 오후 3시경을 말합니다. 그의 기도생활이 철저했음을 뜻합니다. 그것도 형식적인 기도에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오후 3시경은 대낮입니다. 새벽이나 밤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집중하기는 새벽이 제일 좋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기에 잡념 없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후 3시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계속되는 중에 집중하여 기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오후 3시경, 밝은 대낮이었음에도 환상을 볼 정도로 깊이 기도했습니다. 이는 고넬료의 영성이 깊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고넬료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도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하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새벽기도를 계속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상당히 많은 날에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녁기도는 잘 못해도 새벽기도 만큼은 신학교 기숙사 생활에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앞서 일어나 아침 묵상을 학교 정원에서 하는 것이 나의 일과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게을러지고 힘이든지 간혹 새벽기도회도 빠져먹고 있습니다.


늘찬양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갑절의 기도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기도하는 깊은 영성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합니다. 늘찬양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에 더욱 힘쓰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 실천적 영성의 사람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실천적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삶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구제만 열심히 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을 보면 구제하는 것 이상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종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종들이 고넬료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정복자 군대의 백부장을 좋게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고넬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영성도 실천적 영성이 될 때 가치가 높아집니다. 경건도 실천적 경건이 되어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26-2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또한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였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구제한 사람은 없는데 받은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제했는지는 모르지만 구제 받은 사람들은 많은 거예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지난 주 목요일 서천을 다녀오면서 대천에서 목회하고 계신 친구 목사님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노인대학을 운영하는 날이라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교회에 모여 각 분야별로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식사 후 목사님은 입구에 있는 여러 개의 화분을 보여주었는데 그중 가장 조그만 꽃 봉우리를 하고 있는 국화에만 벌들이 유독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와 같다 향기만 있으면 외모가 어떤 한들 벌들이 모여들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벌만 모여든 것이 아니고 똥파리에다 모기 그리고 사마귀까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그들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때 교회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상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이론보다는 실천이 더욱 중요합니다. 영성도 실천적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Ⅲ. 베드로와 고넬료의 순종과 동역


        1. 욥바에 사람을 보내는 고넬료

     고넬료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깊은 영성의 사람으로서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오후 3시 쯤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4-6절)는 말씀하실 때에 고넬료는 자신의 신분과 외모를 따지지 않고 즉시 종 두 사람을 불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 선생을 찾아 편히 모시고 오너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주저함 없이 순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마8:8)고 고백한 백부장의 믿음이 고넬료 에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사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크나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2. 가이사랴로 떠나는 베드로

     베드로가 욥바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으로 가서 이방 사람들을 받아드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마치 드로아에 머물고 있던 사도 바울에게 아시아로 가는 대신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대들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행10:9-14). 하나님께서는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보여주시면서 베드로로 하여금 가이사랴에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는 수 없이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행10:28,29). 결국 베드로는 자기의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에 순복하며 지금 고넬료 집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선입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종들을 사용하십니다. 베드로가 전에는 자기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이제는 조금씩 남이 띠 띠우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구원의 도구로 성령 강림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3.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고넬료와 베드로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환상을 보기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삶, 기도하는 자세로 사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올라오기 전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되다는 것을 설득하여 그의 일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을 집으로 모이게 해놓고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24-25절) 여기서 말하는 ‘절하다’의 단어는 단순히 꾸벅 절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나 황제에게 대하듯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피 지배국의 초라한 어부출신의 베드로에게 황제 대하듯이 절했다는 말입니다.


고넬료가 자신을 황제와 하나님처럼 대할 때에 베드로는 교만하지 않고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26절)하며 고넬료를 맞이했습니다. 지나친 멸시를 받을 때나 지나친 칭찬을 들을 때 사람은 자기 본래의 자기를 상실하게됩니다. 특히 대접을 받을 대 교만하기 쉬운데 베드로는 겸손하게 대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우쭐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성령을 체험한 후 달라졌고, 이런 그를 하나님은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고넬료의 가족들과 그의 친구들은 얼마나 감격하며 기뻐했을까요? 그런 후에 이들은 베드로의 증거하는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신 일과 저가 두르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약속대로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일과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오실 것을 담대하게 증거 하였습니다.”(34-43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방인을 향한 “제2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가이사랴 고넬료 집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성령의 대 사건을 경험한 베드로는  나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5-18)


이제 말씀을 정돈합니다.

결국 베드로와 고넬료는 이방인 교회 설립의 도구로 크게 쓰임을 받는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제2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가이사랴 고넬료 집에 일어났듯 오순절 성령의 불이 말씀과 찬양을 사모하며 나아가려는 늘찬양교회의 모습 위에도 강력한 역사로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의 만남을 귀한 만남으로 바꾸어 가기를 원합니다. 순종과 섬김의 역사, 기도와 영성의 수고로움, 그리고 실천적인 영성과 헌신을 다하며 나아갈 때 우리에게도 놀라운 부흥의 역사와 성령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