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장자의 재앙- 기적강해 10

늘찬양 2014. 4. 11. 16:19

장자(長子)의 재앙

11:4-8.2014,04.13.늘찬양교회

 

 

애굽에 내린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장자의 재앙입니다. 장자의 재앙은 이 세상 어떤 신()도 생명(生命)을 주관할 수 없으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는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 최후의 재앙입니다(30:19, 42:8, 11:25,

요일 5:11-12). 장자의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어떤 신보다 우월하시고 강하신 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애굽 천하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동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애굽의 신들에 국한된 승리가 아니라 신()들로 대표되는 이 세상 모든 신()들에 대한 유일신 하나님의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 장자(長子)의 죽음

 

장자의 죽음 재생의 신() 출산의 여신헤켓, 그리고 생명의 여신 이시스등 애굽의 모든 신들에 대한 결정적인 도전이었습니다. 더욱이 애굽에서 바로 왕과 바로의 장자 역시 신의 아들로서 살아있는 신()의 하나로 추앙(推仰)을 받았는데 바로 그 장자의 아들마저도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애굽의 신들과 바로 왕의 권위는 완전히 실추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내려진 9가지 재앙으로 인해 애굽 땅의 모든 곡식과 가축은 완전궤멸 하는 등 경제적인 파탄이 애굽 땅 전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출애굽기 112절과 3절에서 애굽의 백성들이 바로 왕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두려워하여 자기들의 금은보화를 다 내어주면서 까지 하루속히 애굽 땅을 떠나기를 바랐을까요?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인 들에게 은, 금 등의 패물을 요구하도록 하셨을까? 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처음 애굽의 바로 왕을 찾아왔을 때를 상상해봅시다. 바로와 그 신하들, 그리고 애굽 온 백성이 모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중한 노역을 시켜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까?(6:9) 그런데 9가지 재앙에 이어서 장자의 죽음을 경험하자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백성들에게 은 금 패물을 내어줄 것을 요구하자 애굽 사람들은 두 말하지 않고 얼른 내어주면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사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1:2, 12:36).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4절부터 8절에 있는 대로 "그냥은 못나가겠다. 바로의 모든 신하들이 찾아와 절하면서 애굽을 떠나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여야 나가겠다."고 노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모세가 바로 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왕과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11:4-8). 강퍅하고 완강한 바로 왕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11:10) 바로의 불

순종으로 말미암아 결국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 유월절 사건과 함께 찾아오게 되었

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그들의 장자가 힘없이 쓰러

져 죽는 죽음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맷돌 뒤에 있

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음을 당하여 애굽 전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哭聲)이 들리게 되었습니다(12:30).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애굽 땅에 내린 아홉 가지 재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면 마지막 심판은 눈에 보이는 우상에 대한 심판 즉 장자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에서 장자는 바로 왕 다음가는 우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장자는 아비에게 있어서 기운의 시작이고 가문에 있어 혈통

을 잇는 계승자이기 때문이며. 하나님 앞에서 한 가정을 대표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에게는 형제 가운데 지도자적 지위(37:22)와 존대(43:33) 갑절의 재산

(21:17) 우선권 등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산아제한 이후 가정마다 아이를 한두 명씩 갖게 되면서 부터 자녀가 집안의 큰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살아있는 우상을 하나님이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월절에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애굽에 있는 육축의 초 태생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은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 갔습

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길은 어린 양의 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 입니다. 유월절에 흠 없는 1년 된 숫양의 피가 필요했듯 지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생명입니다. 영생입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

만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의 비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드린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구원함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이 보혈의 은혜를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 드리지 못하면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죽음의 그림자를 지나가게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장자의 죽음이 바로와 애굽 백성들에게는 죽음과 공포의 암흑이었지만 반대로 어린양의 피

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압제 하에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축

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출애굽 하

는 결정적인 해방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 바로 왕으로부터 받은 금은 패물들

 

이번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 인들에게 왜 은, 금 등의 패물을 받도록 요구하셨는가? 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대가를 요구하셨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채찍을 맞아가면서 열심히 벽돌을 만들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하고 무임금 강제 노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와 땀을 착취했습니다. 그런 애굽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흘린 눈물과 땀과 피의 대가 요구하시게 된 것입니다. 애굽인들이 누리던 영화는 이제 끝이 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보상받지 못했던 수고의 대가를 받는 날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애굽인들의 소유 중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동 아시아나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과 외국 근로자들을 3D 업종에서 실컷 부려먹고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밀항자로, 비 영주권자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여 임금도 주지 않고 내어 쫓기가 다반사(多叛事)였습니다. 그 원성이 지금 하늘 끝까지 닫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인 근로자와 여행객들이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몰매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한국 사람들은 손과 발이 잘려나가도 치료비 하나 안주고 임금마저 착취한 채 내어 쫓는 그런 야비한 민족이라고 하여 개 패듯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외 여행가실 때 여러분 몸조심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간계를 꾸며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가로채어 아합 왕에게 건네줄 때에 하나님은 노하여 엘리야에게 명하여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 그리고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하셨다 하라.”(왕상 21:18-19)

악인은 언제나 그 행한 악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때가 이르매 선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6:9,5:7-11).

 

둘째, 이 보물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케 하신 하나님.

애굽을 탈출할 때에 받아온 금과 은이 시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한때는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재료로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에 사단에 유혹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불순종의 행위였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할 때 물질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시험 들게 하는 첫째요소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에 이들이 가지고 왔던 금과 은을 가지고 성전을 만드는 일에 사용되어졌습니다. 백성들은 금과 은을 가지고 성전의 여러 장식품과 물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의 흉패에 금을 붙였고, 제단에 쓰이는 그릇들을 금과 은을 녹여 주물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과 솔로몬을 통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완성하는 놀라운 일에 금과 은이 사용되어졌습니다.

 

이 같은 역사는 신약시대에 와서도 계속되어집니다.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 위에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와서는 절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려 애굽 피난 시 이 예물이 아름답게 사용되어지게 만드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애굽과 같은 세상을 떠나 하나님 편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2제자들을 부르사 제자 삼는 사역을 선포하시면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10:9-1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나 구하는 모습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부(天夫)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다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6:25,32-3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너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는 부름을 받았을 때에 아브라함은 창세기 124절에 기록한대로 말씀을 좇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순종한 결과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이름이 창대케 되는 역사를 얻게 되었습니다.”(12:2)

혹시나 여러분이 교회목사님이나 성도님들로부터 어떤 사명이나 직분을 위임받았을 때에 불평하며 불순종한 적은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멘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상상치 못할 은혜와 축복을 예비하시고 부어주시고자 기다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늘나라의 진정한 보물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보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믿음의 사람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보화중의 보화입니다. 이들은 하늘나라의 진정한 보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동등 될 것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사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희생하실 정도로 우리 한 영혼 영혼은 너무나도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때 금, 은 보화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들의 한 영혼 영혼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보물들을 더욱 귀하고 값지시게 만들기 위하여 애굽 땅에서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고통을 통해 값진 진주가 생겨나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고난을 당한 자만이 하나님을 알고 겸손히 행합니다. 모진 시련과 역경을 견디어 낸 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과 고통들이 역설적인 은혜로서 믿음 안에서 우리의 영적 풍요로움을 만들어줍니다.

 

다윗은 시편 119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412절부터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 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예화(例話) 한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역사가 토인비의 말입니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까지 싱싱한 청어를 가지고 가 많은 값을 받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어부들이 아무리 조심하고 잘 관리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부의 배만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싱싱하게 산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큰 재미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동료 어부들이 하도 이상해서 그 어부에게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싱싱한 청어를 잡아올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 나는 청어를 잡아서 넣은 통에다, 커다란 메기 한 마리를 같이 집어넣어 준다오그러자 모든 어부들이 눈이 동그래 가지고 아니 여보쇼!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다 잡아먹지 않소?’하며 이구동성으로 반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부는 맞습니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다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그 놈은 기껏해야 두 세 마리밖에 못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그 통에 있는 수 백 마리의 청어들은 서로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닙니다.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마치 올챙이들처럼 열심히 헤엄치며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싱싱한 채 이곳 런던까지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 분속에 고난과 아픔과 역경이 있습니까? 이 같은 시련과 고난은 여러분들을 보배처럼 금보다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배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십시오! 저들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채 이방 신과 여러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고 시련이 다가오자 저들은 살려달라고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저들을 기뻐 받으시고 고난에서 절망에서 역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의 애굽 포로 생활 속에서 갖은 고난과 채찍을 당하자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찾고 부르짖는 한 영혼 영혼들을 이 세상 그 어떤 보화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사 여러분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고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다가올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환란이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고 금은보화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어주셨듯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물질도 해결해 주시고 기타 여러 은사와 은혜와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사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술에서 날마다 영광의 주님을 늘 찬양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진 자들로 인하여 배운 자들로 인하여 겁먹지 마십시오. 예수의 이름을 왕의 배경으로 삼고 일어서십시오. 담대히 행하십시오.

바로를 멋지게 항복시키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을 승리케 해 주시려고 재앙의 채찍을 들고 여러분을 괴롭힌 마귀 앞에 서 계십니다. 바로가 모세 앞에 엎드려 절해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여러분을 괴롭히던 마귀도 여러분 앞에 거꾸러질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의 약속을 분명히 지키십니다.

 

바로가 내 앞에 엎드리는 승리의 그 날을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가나안의 축복이 허락 될 때까지 우리 모두 십자가 밑에 엎드려 주님이 하시는 역사를 믿음으로 지켜봅시다. 우리 모두 언젠가 애굽을 떠나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나안을 밟고 여호와 닛시를 외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